[우리말바루기] 푸르른(?)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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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서정주의 시 ‘푸르른 날’이다. 송창식의 노래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시와 노래에 친숙한 만큼 ‘푸르른’이란 단어에도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푸르른’은 ‘푸른’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푸른 날’ ‘푸른 하늘’이라고 하면 영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할지 모르지만 ‘푸른’이 올바른 표현이다.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또는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한 색을 나타내는 ‘푸르다’는 ‘푸른, 푸르러, 푸르니’로 활용된다. 기본형이 ‘푸르르다’라면 ‘푸르른’으로 활용해 쓸 수 있으나 ‘푸르다’에선 ‘푸르른’이 나올 수 없다. ‘푸른 물결, 푸른 바다, 푸른 숲’ 등으로 표기해야 한다.

물론 시적인 표현을 굳이 흠잡을 필요는 없다. 시에는 운율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푸른’보다 ‘푸르는’이 훨씬 리듬감이 있다. ‘푸른’과 ‘푸르른’이 어감이 다르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시와 달리 일반 글에서는 맞춤법을 비켜갈 수 없다. 내키지 않더라도 ‘푸르른’은 ‘푸른’으로 적어야 한다.

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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