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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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의 대(對)이라크 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높아가는 가운데 미군과 영국군의 이라크 포로에 대한 성 학대 및 각종 가학 장면이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이 발생한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는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정치범들과 반대파들에 대한 무자비한 학대와 고문이 자행됐던 곳이다. 그런데 미군이 바로 그 장소에서, 당시보다 더한 인간적 모욕을 느끼게 하는 성 학대와 각종 가학적 고문을 이라크 포로들에게 자행했다고 한다. 이런 행동은 전쟁의 주된 명분으로 후세인 시절의 반인권적 통치행위를 들고 있는 미국의 입장을 약화시키는 것일 뿐 아니라 인류 사회 전체에 슬픔과 실망감을 안기는 일이다.

미군의 가혹행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이미 지난 몇달 동안 몇몇 인권단체와 언론인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또한 미군 당국도 이를 일부 인정해 사진에 찍힌 미군 병사들을 이미 대부분 구속해 수사 중이고,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지휘책임을 맡고 있는 미군 장성에 대한 권한정지를 결정한 상황이다.

때문에 미국이 이번 폭로 이전에 관련자들에 대한 철저한 응징과 처벌을 진행한 후 이라크인들과 국제사회에 사과했다면 사태의 파장은 지금보다는 줄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어 사건을 미봉하려 했다는 의혹과 비난을 함께 받고 있다.

전쟁 포로에 대한 학대는 제네바 협약 위반일 뿐 아니라 인간성을 말살하는 인류에 대한 도전행위다. 미국과 영국은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가해자에 대한 단죄, 국제사회에 대한 사과 및 이라크인들에 대한 사죄책을 내놓아야 한다. 또한 정보기관의 개입에 의한 조직적.계획적 행위라는 의혹에 대해서도 명확한 설명을 해야 한다. 그 길만이 포로를 학대한 일부 군인들의 야만성이 전체 미국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며, 이번 전쟁이 이번과 같은 수치스럽고 더러운 행위들에 의해 명분이 상실되지 않고 보편적 가치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원래의 목적을 조금이라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