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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는 국가의 상처를 치유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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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능희 다큐멘터리 PD는 얼마 전까지 MBC ‘PD수첩’의 책임PD였다. MBC가 광우병 프로그램에 대해 사과한 후 그는 다른 부서로 갔다. 그가 이번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채택됐다. 그는 역사상 가장 논란적이며 가장 중요한 언론인 증인이 될 것이다. 지난여름 광우병 바람이 어디서 어떻게 불어왔는지, 많은 국민이 그의 입을 지켜볼 것이다.

입사 6년차인 1993년 2월 조 PD는 ‘범죄의 사각지대-지하철’이란 프로를 만들었다. 경인전철 마지막 3개 역(제물포-동인천-인천)에서 벌어지는 소매치기를 고발한 것이다. 범인들은 막차에서 술에 곯아떨어진 취객의 주머니를 털었다. 조 PD는 학창 시절이나, 입사해서 중고차를 사기 전까지 막차를 자주 이용했으며 소매치기를 여러 번 보았다고 한다. 94년 출간된 PD수첩 비사록(秘史錄) 『거기 PD수첩이죠?』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전철을 타고 다닐 때 나는 소매치기 현장을 눈앞에 보면서도 어쩌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웠다. 아내와 연애할 때 둘이 같이 목격한 적도 있었다. 나는 여자 앞이라고 갑자기 정의의 남자가 되어 자는 사람을 깨우려 했다. 아내는 내 옆구리를 꼬집었다.” 조 PD는 이 시절의 자책감을 잊지 않았으며 그래서 소매치기 고발에 더 열성을 보였던 것 같다. 조 PD는 몰래 카메라를 들고 자정 무렵 제물포역으로 갔다. 구내에 수상한 남자 3명이 있었다. 열차가 도착하자 그들은 각자 다른 칸으로 흩어져 작업을 시작했다. 조 PD는 그들을 따라다니며 숨긴 카메라로 찍었다. 남자들이 힐끗거리며 쳐다봤다. “심장은 쿵쾅거리며 마구 뛰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쫓아다녔다. 동인천역이 가까워지자 이들은 황급히 나를 따돌리고 사라졌다.” 그가 찍은 장면은 전파를 탔고 바로 3명 중 한 명이 붙잡혔다.

PD수첩의 광우병 프로가 방영된 건 2008년 4월 말이다. 전철 소매치기에서 광우병까지 15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조 PD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나는 모른다. 상식적으로 보건대 그는 다른 다큐멘터리 PD처럼 살아왔을 것이다. 아이템을 찾으려 신문과 잡지를 뒤지고, 수사관처럼 조심스럽게 제보를 확인하고, 몸 사리는 사람을 카메라 앞에 세우고, 방송국 소파에서 잠을 자고, 그러곤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만든 것을 열심히 설명했을 것이다. 그게 다큐멘터리 PD의 길이다.

PD수첩은 18년의 역사 동안 비리를 고발하고 진실을 추적하는 역할을 해왔다. 젊은 PD들은 그동안 인권유린과 지도층 비리, 탈세족, 사이비 종교집단을 고발했다. 한 사회가 이런 프로를 갖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 프로그램의 역사엔 젊은 PD들의 땀과 열정이 녹아 있다. 조 PD는 책에 이렇게 썼다. “내가 PD수첩에서 한 것이라곤 선배들이 쌓아놓은 프로그램의 명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려고 6개월 내내 헉헉거렸다는 것이다.”

 PD수첩의 광우병 프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여기서 다시 말할 필요는 없다. 채 반년도 되지 않아 그 프로에 등장했던 광우병 유령은 사라지고 대신 중국산 먹거리 불안이 눈앞에 닥쳤다. PD수첩은 고생한 선배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이어갈 후배의 터전이기도 하다. 지금도 좋은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장이 있는데도 다큐멘터리 PD의 길을 택한다. PD수첩은 그들이 꿈을 이룰 공간이다. 15년 전의 조 PD처럼 후배들이 자랑스럽게 땀을 흘릴 수 있도록 PD수첩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PD수첩으로 생겼던 국가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그 중요한 일이 조 PD에게 달렸다.

PD도 인간이며 때론 실수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를 인정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비는 일이 아닐까. 조 PD는 지금 운명의 시간에 다가서고 있다. 선배들의 땀 냄새, 후배들의 숨소리, 물러서지 말라는 소신 또는 압력, 여야로 갈린 국회의원, 그리고 46세 PD의 입을 바라보는 국민…. 그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김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