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1인당 4조6000억 운용 … 네덜란드의 8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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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돈 불려 달라고 했나요? 지금까지 국민연금으로 낸 돈이 무려 1800만원쯤 되네요. 힘들여 번 돈 허공에 날릴 줄 알았다면 내지 않았을 것을….’(아이디 김태훈)

‘가만 놔둬도 적자인 국민연금을 지킬 생각은 고사하고…. 원금을 날리고도 앞으로는 주식투자를 늘리겠다고요? 기금운용위원회는 해체하십시오.’(아이디 김미정)

25일 국민연금기금이 올해 8월까지 -0.99%의 수익률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국민연금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비판의 글이 잇따랐다. 주식·채권·대체투자 가운데 국내 주식부문은 -20.68%의 수익률을 기록해 기금 전체 수익률을 마이너스로 끌어내린 ‘주 요인’이다. 국내 주식·채권 책임자인 기금운용본부 온기선(50) 증권운용실장은 요즘 좌불안석이다. 쏟아지는 비판 때문이다. 228조원에 달하는 한국인의 ‘노후 종자돈’은 안전한 걸까. 온 실장의 ‘하루’를 통해 국민연금 운용 실태를 들여다봤다.


◆국내 금융시장의 ‘절대 권력’=26일 오전 8시 서울 신사동 국민연금 강남지사. 온 실장은 국내에도 멜라민이 함유된 중국산 과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해당 종목의 주가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 주식팀과 회의를 했다. 30분간 이어지는 회의에도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전화가 빗발쳤다. 온 실장은 “하루에도 전화가 수백 통, 메일은 200~300통씩 온다”고 말했다. 온 실장이 운용하는 국민연금 자금은 192조원. 국민연금기금 228조원의 74.4%를 차지한다. 증권운용실 운용역이 20명이니 1인당 10조원가량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금운용본부 전체로 보면 직접 자금운용을 담당하는 직원은 모두 49명으로 1인당 평균 4조6000억원가량을 운용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 채권시장의 18%, 주식시장의 3.5%를 주식·채권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국민연금을 ‘연못 속의 고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규모가 작은 국내 시장에서 주로 활동하는 덩치 큰 국민연금의 모습을 빗댄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연기금운용의 평가와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국민연금의 자본시장 지배력이 과도하게 확대되면 금융안정에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인의 노후 종자돈, 안전한가=오전 9시 주식시장이 시작하자 운용역이 내부 회의에서 방향을 잡은 대로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주식시장 하락으로 엄청난 평가손을 기록해 외부의 시선이 따갑지만 이달 들어 국내 주식투자는 공격적으로 하고 있다.

그는 9월에만 국내 주식을 2조원 순매수했다. 온 실장은 “개인들이 놀라서 물러설 때 국민연금은 사들이고 개인들이 흥분해서 들어갈 때 국민연금은 관망한다”며 투자원칙을 전했다.

온 실장은 “자금 운용은 운용역 한 명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구조”라며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한 계획을 토대로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민주노총 부위원장, KDI 원장,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등 20명이 참여하는 기금운용위에서 2007년 6월 ‘2008년 자금운용계획’을 의결하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그때부터 ‘연간 세부 자금운용계획’을 마련한다. 이런 다음 ‘월간 자금운용계획’을 마련해 본격 투자에 들어간다는 설명이다. 월간 계획은 보통 한 달 전에 만든다.

온 실장은 최근 주식 평가손과 관련해 “만약 3년 전 20만원에 산 주식이 지난해 60만원으로 올랐다가 올해 50만원으로 떨어졌다면 이것이 손해를 본 것이냐”고 반문하고 “국민연금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보건사회연구원 윤석명 박사는 “국민연금은 투자의 원칙상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게 필수적이고 주식투자 확대나 해외 투자도 불가피하다”며 “단기 손실을 가지고 문제 삼는 것은 숲은 안 보고 나무만 보는 꼴”이라고 말했다.

◆손실 나면 바로 조정…전문성은 부족=오후 5시가 되자 온 실장은 운용역과 하루의 매매 내용을 분석한다. 매입한 주식 가운데 낯선 주식이 발견되면 왜 샀는지, 전망은 어떤지 꼼꼼히 따진다. 내부 검증으로 혹시라도 있을 부정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다. 온 실장은 “만약 개별 운용역의 운용 실적이 나쁘면 바로 팀 회의를 통해 포트폴리오를 조정한다”고 말했다. 주식 투자의 기준은 국내 종합주가지수(코스피)다. 국민연금은 이 지수보다 1~2%포인트 수익률이 좋은 것을 목표로 한다. 올 1~8월 코스피 지수가 22.3% 하락하는 동안 국민연금 주식부문은 20.68% 손실을 기록했다.

철저한 계획 아래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국민연금기금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민연금기금은 49명이 자금을 운용한다. 하지만 자산규모가 비슷한 네덜란드연금은 400명에 달한다. 한 사람당 운용하는 자산이 너무 많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김선정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현재 새 직원을 선발 중”이라며 “운용인력을 25명가량 충원한 뒤 전문성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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