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私見 접어둘줄 아는 타협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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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 공화당 전당대회를 취재하면서 민주주의 선진국이 가진 제도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러운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것은 전당대회를 통한 「당론 단일화」였다.
공화당이 예비선거 기간중 드러냈던 분열된 당론은 이번 대회에서 하나로 묶여졌다.
당의 정강정책 결정 과정을 통해 당내 이견을 수렴하고 다른 견해.철학.논리를 타협.조정을 통해 단일한 목소리로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봅 도울은 자신의 기존 중도노선 이념을 상당 부분 포기하고 강경 보수파의 주장을 수용했다.
도울은 이를 자신의 패배로 간주하지 않았다.공화당이 백악관을재탈환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나아가 완강한 중도노선 고수론자들을 설득,정강정책이라는당의 이름 아래 동참하도록 유도했다.
중도론자의 대표격인 콜린 파월 전합참의장은 공화당 정강정책의골자인 낙태금지와 반(反)이민법 강화에는 반대하지만 『나는 공화당원』이라고 선언,소속정당의 승리를 위해 자신을 던졌다.
도울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잭 켐프 역시 반이민법에 대한 기존의 반대 입장을 바꿔 지지로 선회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공화당 내부에서 「변절자」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는 없다.
낙태지지자인 수잔 몰리나리 의원은 기조연설에서 자신의 낙태지지 입장을 거론하지 않았다.
결국 공화당의 이번 당론은 한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이견을가진 당내 실력자들이 자리를 같이해 함께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정치 보스 한사람이 지시한 것이 아닌,그래서 유권자들에게 떳떳이 내놓을 수 있는 당론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시의 정치」가 아닌 「타협의 정치」의 결과이며 이 점이야말로 미국 정당의 전당대회가 갖는 힘이다.
샌디에이고 진창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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