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는 달라도 노랫소리는 똑같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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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다문화 어울림 여성합창단’이 25일 금오오페라단 김명찬씨의 지휘에 따라 노래와 율동을 맞추는 연습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무대에 오른 다음에는 고개를 숙이면 안돼요. 이렇게, 먼곳을 쳐다 보세요. 아시겠죠.”

23일 오전 11시 경북 구미시 형곡동에 있는 한 건물의 지하 1층. 베트남·몽골·필리핀 등 6개국 여성 결혼이민자 30여 명이 지휘자를 쳐다보며 한국 노래를 연습하고 있었다.

“자! 배가 많이 나온 분들은 앞줄에 앉으세요.”

지휘자는 27일로 예정된 첫 공연에 대비, 자리를 배치하면서 맨앞줄 의자에 임산부들이 앉도록 했다. 말 뜻을 알아듣고 여기저기서 웃음이 쏟아졌다. 데뷔 무대는 구미서 열리는 ‘아시아 음식문화축제’ 행사장이다.

이어 율동 연습. 허리와 손가락 동작을 얘기했지만 더러는 눈만 멀뚱거렸다. 강사가 하는 말을 금방 이해하지 못해서다. 노래는 상당한 수준이다. 노래만 들으면 이들이 이주여성인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합창단 이름은 ‘다문화 어울림 여성합창단’. 구미를 중심으로 결혼이민자 정착을 지원해온 사회단체 ‘아름다운 가정 만들기’(대표 장흔성)가 올해 4월 결성한 국내 첫 이주여성 합창단이다. 만국 공통어인 음악을 통해 다문화가정과 이웃이 융화될 수 있도록 한국인 주부도 10명이 참여하고 있다. 구미와 인근 지역에서 모인 단원들은 매주 화·목요일 노래를 연습해 왔다. 임신한 몸에 아이 손을 잡고 온 이도 있었다. 대부분 한국에 온 지 1∼3년 된 이들이다.

음악 지도는 구미 금오오페라단을 이끌고 있는 김명찬(47)씨가 맡았다.

“처음엔 절반이 가사도 읽지 못했어요. 그러면 같은 나라 출신이 발음을 가르쳐 주고 뜻을 설명하면서 도왔습니다. 합창 연습 전에는 한글반에서 가사를 익히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처음엔 분위기도 산만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소절을 몇 번씩 반복해 연습했습니다.”

지휘자 김씨는 “이들은 음악과 무관하고 피부색과 모국도 다르지만 배려를 통해 이제 화음을 내기 시작했다”라고 감격스러워 했다.

이들이 데뷔 무대에서 부를 노래는 ‘내가 만일’ ‘어머나’ ‘사랑으로’ 등 한국 가요 5곡의 메들리다. 그 다음 공연에선 베트남 노래 ‘호 아저씨’와 중국 가요 ‘티앤미미’ 등 출신국 대표곡도 같이 부를 예정이다.

출신국 대표곡은 선정부터 악보 확보까지 모든 게 아주 힘들었다. 각 나라의 대표곡을 파악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해당국의 주한 대사관에서도 연주용 악보를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장 대표는 “놀라운 것은 노래를 부르면서 이주여성들이 굉장히 밝아졌다”라고 말했다. 같이 노래하고 웃고 떠들면서 한국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가정도 그만큼 밝아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거쳐간 단원이 1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시댁의 반대 등으로 그만둔 단원이 많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으로 시집온 지 3년이 지난 베트남 출신 합창단원 레비츠투엔(24·구미시 봉곡동)은 이날 두 살 난 아이를 데리고 연습하러 왔다. 그는 “여기서 배운 노래를 가족들과 노래방에서 불렀는데 95점을 받았다”라고 자랑했다. 남편 김영복(42)씨는 “노래를 배우면서 한국말이 훨씬 좋아졌다”며 합창단 활동을 적극 찬성했다.

삼성전자는 이들에게 하늘색 합창단 단복을 만들어 주었다. 이들은 11월 말까지 경주·해남 등지로 전국 순회 공연에 나선다. 내년에는 여성부의 지원으로 모국인 중국·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을 직접 방문해 공연할 계획도 세웠다.

송의호 기자 ,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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