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공로 건국훈장 이병희女史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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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자금을 대주며 독립투쟁을 지원하던 영친왕 내관의 손자가 나라를 배신해 육사(陸史)를 밀고하는 바람에 함께 붙잡혔지요.죽지않을 만큼 고문당한 육사선생은 피고름을 쏟아내며 두눈을 부릅뜨고 저세상으로 가셨어요.』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애족장)을받게 된 이병희(李丙禧.77.서울서대문구창전동53의76)여사는『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조선사람이면 누구나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라며 겸손해 했다.
李여사의 집안은 의열단원이었던 아버지 이경식(李京植.45년4월25일 작고)씨도 이날 함께 건국훈장을 받을 정도로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1918년 태어난 李여사는 할아버지뻘인 육사와 아버지등으로부터 『지금은 학교보다 나라의 광복이 더 시급하다』는 권유를 받고 15세 되던 33년 서울여상을 중퇴(1년)하고 조선 최대의일본인 방직공장인 종연방적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여공을 중심으로 조직을 결성,공장노동운동을 주도하다이듬해 동대문경찰서에 붙잡혀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李여사는 육사가 있던 베이징(北京)으로 망명,의열단원등과의 연락책으로 활동했다.
『조선에 잠입했던 육사가 잡히고 나도 잡혀(25세) 형무소의앞뒷방을 쓰게 됐을때 육사는 「괜찮냐?너는 이제 결혼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진술해야 한다.목숨을 건져 더 큰일을 해야 한다」고 당부하셨지요.』 결혼을 조건으로 풀려난 李여사는 얼마뒤 육사의 옥사소식을 접하게 된다.李여사는 육사의 시신과 함께 평소 육사가 끔찍이 아끼던 만년필과 마분지를 묶어 만든 육필시집등 유품을 챙겼다.그 시집엔 지금도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광야』 『청포도』등이 실려있다.
아들 조영철(趙永哲.42.건축업)씨 내외와 함께 사는 李여사는 당시 일본영사를 며칠이나 졸라 시신을 조선으로 옮겨 육사의동생에게 인계한 사실을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않고 지내왔다.
그러나 2년전 종연방적에서의 활동내용이 담긴 판결문이 발견되면서 비로소 독립운동내용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이와 함께 육사의 베이징에서의 행적도 베일을 벗게 됐다.
李여사는 『해방이 기쁘기는 했지만 반쪽이라는 한심한 조국의 모습에 맥이 풀렸어요.지금 젊은이들은 분단조국의 통일을 생각해야 할텐데…』라며 안타까워 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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