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 아이템] 초가을 울 니트의 매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캐시미어 70% , 실크 30% 혼용률의 니트 피케 셔츠. 발렌티노(Valentino) 제품.

아무런 이유 없이, 괜히, 왠지 모르게 갑갑증이 나거나 살짝 짜증이 났던 적이 있나요? 진짜 그냥.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럴 땐 제가 뭘 입고 있는지를 다시 확인해 봅니다. 너무 꽉 끼어서 혈액순환을 막거나, 너무 헐렁해서 옷 매무새에 신경 쓰느라 정신 없는 건 아닌지. 그것도 아니라면 몇 년 전에 경험한 ‘새로운 발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2000년 늦은 가을, 여느 때와 같이 막히는 저녁시간의 택시 안에서 말할 수 없이 불편했습니다. 단순히 교통체증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 좋지 않은 느낌이 아주 직접적이라 빨리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조급증까지 더해졌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좁은 공간에서 많은 생각과 농도 짙은 스트레스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날 처음 꺼내 입은 스웨터를 벗어 보았습니다. 갑자기 날아갈 것 같은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괘씸한 마음에 그 스웨터 소재의 혼용률을 살펴보니 뭔가 이것저것 복잡하게 섞여 있는 니트사였습니다. 특히 그 니트사를 따라 길게 섞여 있는 앙고라 털에 제 신경이 계속해서 거슬렸다고 나름대로 판결을 내렸죠. 그날 이후 앙고라 소재 니트는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운 아이템이 돼 버렸습니다. 옷을 살 때는 항상 꼼꼼히 소재를 체크하는 버릇이 생겼고요.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을 그동안 등한시하면서 살아온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입은 옷은 최소한 10시간 이상 저와 함께하는 데도 말이죠.

저는 특유의 보온성과 디테일의 매력 때문에 니트 아이템을 즐겨 입습니다. 특히 환절기에는 좀 더 자주. 상쾌한 느낌이 그리운 봄에는 순면 소재, 따스한 기운이 당기는 가을에는 울 소재를 택합니다.

한 3년 전부터는 캐시미어와 실크 혼방의 얇은 니트 아이템의 열렬한 팬이 됐습니다. 캐시미어와 실크 혼방의 얇은 니트 카디건이나 V넥 스웨터는 기분이나 활동에 따라 춥거나 덥기를 반복하는 가을에 셔츠나 티셔츠 위에 가볍게 걸칠 수 있는 훌륭한 아이템이죠. 캐시미어의 고급스러운 보온성과 실크 스카프의 기분 좋은 감촉이 함께 만나서인지 습관적으로 쓰다듬게 됩니다. 니트의 단점인 보풀이 생길 수 있음에도 말이죠. 최근에는 그 느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피케셔츠 타입의 니트 아이템도 구입했습니다. 어떤 느낌이냐고요? 항상 가까이에 두고 싶은 느낌입니다.

하상백 (패션 디자이너)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