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비타민] “동생 교통사고 보고 충격으로 실어증 아홉 살 언니에 보험사가 배상해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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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00년 5월 15일 오후 4시. 박모(당시 9세)양은 경북 경주시 서악동의 집 앞 이면도로에서 한 살 아래 여동생과 걸어가고 있었다. 이때 록스타 지프차량이 모퉁이를 돌며 동생을 덮쳤다. 박양은 이 장면을 옆에서 지켜봤다. 사고로 동생은 팔과 다리, 골반을 포함해 네 군데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박양도 사고목격 이후 충격으로 실어증과 수면장애, 대인관계 장애와 같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을 보였다.

대법원 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가족의 교통사고를 목격한 어린이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대해 보험사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21일 밝혔다. 대법원은 가해차량 보험사인 동부화재보험이 낸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1심 재판부는 2005년 6월 사고 당사자인 여동생 외에도 목격자인 언니 박양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인정해 치료비와 위자료로 모두 28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을 맡은 대구고법은 “언니의 정신적 장애는 원래부터 갖고 있던 인격적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며 위자료 1000만원만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고 당시 9살에 불과한 어린이가 가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을 목격해 받은 고통과 정신적 충격이 ‘외상적 사고’로 작용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의 발병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사고로 직접 다치지 않았어도 사고 3개월 뒤에 원형탈모 증세로 치료를 받을 정도로 사고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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