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한판 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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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본선 32강전>
○·구 리 9단(중국) ●·진시영 3단(한국)

 ◆제7보(77∼89)=백△로 급소를 밀렸으므로 흑엔 ‘참고도’처럼 한가롭게 받아주고 있을 여유가 없다. 백2로 지키면 백은 양쪽을 다 둔 모습. 3으로 꼬부려도 그다지 위력이 없고 중앙 흑은 자칫 곤마의 위험성마저 안게 된다.

진시영 3단은 77로 뚝 끊는다. 피를 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78때 79의 마늘모가 교묘한 행마. “잘 둔다.” 감탄하고 있을 때 구리 9단도 80의 마늘모로 날카롭게 응수해 왔고, 이로써 83까지의 대 바꿔치기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흑은 82로 요석 석 점을 잡힌 것이 수족을 잘린 것처럼 아프다. 그러나 백도 83까지 내준 실리가 자못 커 과연 이게 잘된 장사인지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83으로 불어난 실리는 줄잡아 20집. 게다가 상변 백 집이 제로가 되었으니 +5집. 중앙 석 점은 단지 6집이지만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두터움이 사해를 위압하고 있어 ‘밑진 장사’라고 단정하기도 힘들다.

구리는 84로 뛰어들어 새로운 전장을 연다. A로 씌워도 B로 움직이는 유명한 탈출 수단이 있고 중앙으로 둥둥 뛰어가봐야 기다리는 건 백의 군사라 흑도 고민이다.

진시영은 장고 끝에 85로 파고들었는데 선악을 떠나 그 치열함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 상대가 당대의 고수로 손꼽히는 구리인데도 19세의 진시영은 겁먹기는커녕 오히려 상대의 수염을 잡고 흔들며 싸우자고 덤비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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