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얘기 여름밤 더위사냥-KBS '전설의 고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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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돌아온 『전설의 고향』이 인기다.
「재탕의 식상함」이라는 불안을 깨고 『목욕탕집 남자들』『신고합니다』『사랑할 때까지』와 함께 「드라마 KBS」를 만드는 4대 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오랜만에 등장한 「옛날얘기」라는 점이다.궁중생활을 그린정통사극과는 또 다르게 어릴적 할머니 무릎을 베고 듣다 잠들던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낯뜨거운 장면에 대한 위험부담 없이 온가족이 오랜만에 오순도순 둘러앉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은 그 가치가 거의 땅에 떨어진 효.지조.의리.지순한 사랑등에 대한 중요성을 은연중 부각시키고 있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그것은 젊은이의 감각적 삶과 도회층의 이악스러운 삶을 그리는데 치중하는 드라마 홍수 속에서 돋보이는 차별 성으로 특히중년층으로부터 기대이상의 호응을 얻고 있다.
물론 7,8월 납량특집용으로 기획된 만큼 거의 매회 등장하고있는 귀신도 빼놓을 수 없는 극의 활력소다.『귀신이 등장하면 시청률이 10% 올라간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우선 당초 기획대로 컴퓨터를 이용한 「전설의 현대화」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제작진은 컴퓨터그래픽이 성과를 내기 위해선 최소한 3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시간부족에다 기술진과 아이디어 부족이 겹쳐 난조를 보였다고 털어놓는다.
하긴 『마스크』『주라기공원』『주만지』등 외국의 현란한 첨단 영상에 익숙한 요즘 어설픈 분장이나 컴퓨터그래픽은 싸구려 애국심조차 얻어내기 힘든 상황이다.
이와함께 동물들을 드라마에 등장시키는데 드는 고충도 만만치 않다고 토로한다.
여우로 분한 개가 울지않는등 연기에 성의(?)를 보이지 않아결국 개주인과 몸싸움을 벌였다든지 구렁이가 혓바닥을 내밀지 않아 마구 때린끝에 결국 죽게했다는 얘기등은 웃어넘기기엔 뭔가 아쉬운 점이 남는다.
83년 제36회 칸영화제에서 일본의 『나라야마 부시코』가 그랑프리를 받은데는 까마귀와 파충류,심지어 곤충전문가의 열정이 있었다는 사실은 전문 동물조련사 하나 찾기조차 어려운 우리에게많은 생각할 점을 준다.앞으로 남은 작품에서는 보다 기발한 아이디어,실감나는 분장,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더잘 가다듬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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