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중국이 있었더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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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체제가 살아남을 것인가 점치는 일을 포함해 우리의 「북한읽기」가 정확지 못한 큰 이유중 하나는 중국의 존재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데 있다.한국문제에 관한한 중국은 93년 북핵(北核)위기 이후 북한과 미국이 벌인 협상의 그늘에 가려왔던게 사실이다.거기서 북한이 붕괴하거나 개혁.개방으로 살아남는다 해도중국의 작용과는 크게 관계가 없을 것이라는 중국경시(輕視)가 생겨났다.
베이징(北京)에서 만난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중국의 북한정책에관해 두가지를 분명히 했다.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좌시(坐視)하지 않을 것이고,미국 단독으로 북한을 위기에서 구해내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중국에 북한은 당 연히 한반도문제인 동시에 동북아시아의 지역문제여서 동북아시아 세력균형 틀안에서 북한을 보는 것이다.
중국에 북한의 붕괴나 한국에 의한 흡수통일은 첫째,한반도에 친미적(親美的) 통일정권이 등장하는 것을 의미하고 둘째,수많은북한 피난민이 중국으로 유입돼 동북지역의 소수민족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중국이 북한문제에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준 것은 92년8월 한.중(韓.中)수교이후 북.중(北.中)관계가 계속 긴장상태에 있어왔기 때문이다.특히 김정일(金正日)이 95년 6월10일 노동신문에 중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긴 논 문을 실은 것을 계기로 북.중관계는 극도로 경직됐다.
김정일은 이 논문에서 사회주의혁명의 배신자들이 사회주의사상을왜곡,변질시킨 결과 사회주의가 방향을 잃고 자본주의의 길로 가고 있다고 공격했다.김정일에 의하면 그들이 외치는 「공개성」과「다원주의」의 구호가 사상적 혼란을 조성하고, 반동적인 부르주아사상 문화를 만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김정일은 중국의 이름을들지는 않았지만 그의 공격대상이 중국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없었다. 중국지도부는 크게 분노했다.중국의 전문가들 중에는 김정일이 중국에 와서 직접 사과하지 않는한 북.중화해는 어렵다고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국은 북한의 대만접근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그러나 중국을 가장 민감하게 자극한 것은 북.미(北.美)협상이다.북한은 60년대의 중.소(中.蘇)분쟁때 소련과 중국을 상대로 북한돕기 경쟁을 붙이는 줄타기외교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북한 이 지금은 미국카드를 이용해 중국과 적당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그러나 올들어 북한은 중국에 부쩍 화해제스처를 쓰고 있다.3월부터 7월사이 15번이상의 사절단을 중국에 보냈다.중국도 14번의 대표단파견으로 화답(和答)했다.지난5월 홍성남(洪成南)부총리 일행을 맞은 중국은 2만이라는 상징적 양■ 쌀을 지원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북한이 6월중 노동신문과 중앙통신을 포함한 언론계대표단을 개혁현장시찰목적으로 세차례 중국에 보낸 사실이다.언론계사람들의 잇따른 중국방문은 북한이 중국을 모델로하는 개혁을 시작하려는 준비작업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이런 분위기를 보면 중국이 앞으로 5년간 해마다 곡물 50만과 석유1백30만을 북한에 제공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근거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북한의 붕괴도,독일식의 통일도 원치 않는다.따라서 언젠가는 북한지원에 나설 것이다.그리고 한반도평화의 새 틀을 짜는데 적극 참여할 것이다.중국이라는 플레이어가 링에 뛰어들면 한국문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게임이 될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한국은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과 러시아까지 포함한 이해당사국 모두를 유기적으로 묶어 생각하는 북한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중국의 등장에 긴장할 것도없다.중국이 북한과 화해하고 북한을 지원해도 냉 전시대의 형제국관계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베이징에서.국제문제대기자)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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