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깊이읽기] 또 멈춘 '공익적 오락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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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3일 시행하는 KBS의 프로그램 부분 조정에서 'TV 교과서 학교야 놀자'와 '황금의 시간'이 폐지된다. 지난해 11월 가을 개편 때 신설한 프로그램이니 딱 6개월 만이다. 둘 다 정연주 사장이 취임하면서 '오락 프로그램에 공익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탄생했건만 중도하차 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뜻을 품고 출범했던 '일요일은 101%'는 최근 컨셉트를 확 바꿨다. 이 프로그램 역시 가을 개편 당시 인기가 높았던 '수퍼TV 일요일은 즐거워'를 밀어내고 '공익적 오락'의 새 모델을 제시하겠다며 야심적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반년도 안 돼 백기(白旗)를 들고 순수한 버라이어티 오락으로 되돌아갔다. 청년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찾아주는 '꿈의 피라미드' 코너를 독립시켜 일요일 오전에 새로 편성하고 다른 코너는 '수퍼TV'와 유사하게 채웠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만남' 코너는 물대포 쏘기로 연예인을 가학적으로 다룬다는 논란을 빚었던 '수퍼TV'의 '위험한 초대'와 비슷한 형식이다. 물세례를 맞는 출연자가 남자에서 여자 연예인으로, 물대포가 폭우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 결과 5% 내외였던 시청률은 코너가 바뀐 뒤 상승해 9.5%(TNS 조사 결과)까지 뛰었다.

정사장은 "'일요일은 101%'의 변화는 오락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일 뿐 다시 시청률에 신경쓰겠다는 얘기는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보와 교육적 메시지를 담은 오락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요구한 게 아니라 참고로 하라고만 했는데, 일선 PD들이 참고 이상의 강도로 받아들인 탓"이라며 지난 6개월간의 잘못을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그동안 공영방송의 시청률 지상주의가 많은 비판을 받아온 만큼 시청률과 무관하게 유익한 오락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정사장의 뜻을 나무랄 이유는 없다. 정보와 메시지를 주면서 즐거움도 함께 만끽할 수 있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무리하게, 위에서 하라고 하니까 억지로 '공익'과 '오락'을 합치다 보다 실패작이 나오는게 아닐까.

오락 프로그램의 공익성 강화라는 KBS의 실험은 정권이 바뀌어 새 사장이 부임할 때마다 몇 차례나 반복돼 왔다. '공영방송의 공익성 강화'라는 명제 아래 오락 프로그램이 희생양이 돼온 셈이다. 그러나 이제 그간의 시행착오로 충분한 만큼 지상파 방송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현실적인 관점을 세울 때다. 덧붙여 오락 프로그램만 달달 볶지 말고, 정작 '공영의 정신'이 필요한 프로그램에 허술한 점은 없는지 둘러보는 일이 더 시급해 보인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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