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둘레길에서부터 히말라야 직지봉까지… ‘산악인 박연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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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6일, 파키스탄 북부 해발 6,235m 히말라야의 한 봉우리에 새 이름이 생겼다. 그 이름은 직지봉.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이제 세계 각국의 지도 및 산악 지도에 한글 이름이 찍히게 된다. 몇 개의 산악팀이 도전했다가 번번이 실패했던 이 무명의 악산 정상에 직지 깃발을 꽂은 주인공이 바로 우리나라 산악인 박연수 대장이다.

직지봉 발견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박연수 대장은 그 동안에도 활발하게 산악구조와 도보탐사 등의 활동을 벌여왔다. 사실 박 대장이 최근에 가장 집중하는 활동은 충북도계탐사팀과 함께하는 ‘삶 결 따라 이천 오백 리’. 고속도로 등으로 끊어진 길, 막힌 길을 돌아 도내 도보 일주 코스를 개발하려는 충북도계답사 프로젝트다. 사라진 옛길과 산길을 잇는 것도 이들의 일이다.
박 대장과 탐사대원들은 2006년 충남 조치원을 출발해 시계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현재 연풍면 분지리를 지나 쌍봉리까지 탐사를 완료했다. 절반 정도 걸은 셈이다. 박 대장은 이 속도로 2010년까지 걷는다면 국내 최초로 도계 트레일 코스가 마련될 것으로 본다.
탐사팀의 빼놓을 수 없는 사업으로 “방치된 길 돌보기, 구역이 불분명한 행정상의 오류 바로잡기, 지역 문화 발굴하기” 등도 있다. 마을의 문화와 역사를 살려 트레일 코스를 개발하기 위해 지역 행정가나 지역 문화 연구가들로 구성된 마을탐사팀을 별도로 꾸렸다.
“길을 잇는 일은 지역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자연히 주민 생활을 개선하는 데 기여해야죠. 가령, 충남-충북 경계지역에 사는 일부 도민들의 경우, 안채는 충남이고 마당과 대문은 충북으로 돼 있어요. 어떤 주민들은 소음과 치안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생계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고요. 도계탐사를 하면서 이런 사례들을 계속 수집하고 관할 행정부서에 알릴 예정입니다.”

탐사팀은 환경감시단의 역할도 병행한다. 도계탐사를 시작한 2006년, 진천을 지날 때 무분별한 도로공사 때문에 산사태가 크게 일어나는 과정을 지켜보고 아찔함을 느낀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박 대장은 “산사태는 자연환경이 위험에 처했다는 경고인 동시에 지역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커다란 재앙”인데도, “우리나라는 그 예방과 대처에 안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장과 탐사팀들은 행정적으로 개선할 부분의 자료를 계속 모으는 중이다.
박 대장이 이끄는 충북도계탐사팀에는 훈련된 산악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도민들도 있다. 잡목이 우거진 험한 산길을 걷다가 상처가 나기도하고, 부주의로 인해 이름 모를 피부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한 명의 대원도 낙오 없이 탐사를 완수해 왔다.
“우리가 많이 걸으면 걸을수록 더 많은 길을 발견하게 될 거고, 도민들의 삶과 환경도 나아질 거라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박 대장은 “충청북도에서 다 잇고 나면 다른 지역의 길을 잇는 것도 가능하겠죠?”라며 제법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워크홀릭 담당기자 설은영 e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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