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젊은 알콜 중독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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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술 권하는 사회에서 술 못먹는 병신으로 살 자신이 없다.』알콜중독으로 20여일간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중인 20대 박모씨 수기는 이렇게 끝나고 있다.고교 2학년 밴드부에 들어가 술을 강요당하면서 소주 2병을 마시는 어린 술꾼이 되 고,취업하자 술자리는 잦아지고 음주량도 급격히 늘었다.마침내 손떨림이 시작되고 가끔 피를 토하면서 낯선 곳에서 잠을 깨는 횟수가 늘었다.주사까지 심해졌지만 술이 깬 다음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이게 바로 알콜중독이다.사태가 심각한 것은 이런 알콜중독자 연령층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문체부의 약물남용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중.고생 음주경험이 이미 93년에 58.8%로 늘었고 계속 증가추세라는 것이다.국립서울정신병원 알 콜병동에 입원중인 75명중 9명이 20대고,개원이래 20대환자가 10%씩 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우리 사회엔 알콜중독자가 흔치 않았다.술마시는 법도가 엄했고,많은 술을 자주 마실만큼 경제적 형편도 넉넉지 못했다.
이젠 주도(酒道)도 무너졌고 경제적 형편도 나아졌다.각종 형태의 통과의례가 있을 때마다 이른바 「폭탄주」가 돌 고 폭음을 강요한다.신입생 환영파티에서 폭음을 강요해 숨지는 학생이 속출하고 있다.
1차적 책임은 성인들의 무분별한 폭음문화가 젊은이들에게 답습된 탓이다.군사문화의 잔재라 할 폭음이 청소년에게까지 파급되고,요즘 대학생들의 주머니사정이 넉넉해진데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건전한 청년문화가 자리잡을 터전이 없고,직장 스 트레스를 해소할 출구가 없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여기에 「술 권하는 사회에 술 못먹는 병신」이라는 직장풍토가 크게 작용한다.또 알콜중독을 정신질환으로 보지 않는 관행도 문제다.
젊은 알콜중독자가 늘어나는 추세는 이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음을 말한다.젊은이가 술에 취하면 사회가 취하고 나라 장래가 어두워진다.가정과 사회가 나서서 알콜중독의 공포를 알리고,이들을치료하고,예방하는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이와 병 행해 성인들 스스로 절제있는 음주법의 모범을 보이고 직장마다 술 권하는 풍조를 추방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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