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치료 급한데 …

중앙일보

입력

"충분한 의료진이 이미 파견돼 있고 약품도 기본적으로 해결되고 있어요.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네다."

북한 내각의 최성익 책임참사는 이런 말로 남측의 의료진.병원선 파견 제안을 거절했다. 27일 용천역 폭발사고 구호를 위한 남북 당국 간 대표 접촉에서다. 열차 폭발 참사가 터진 지 이레가 지났지만 북녘 용천 땅으로 가는 길은 좁기만 하다. 북한 측 발표로만 150여명이 죽고 1300명 넘게 다치는 엄청난 피해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남한의 지원 발길이 닿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짐을 쌌던 남측 의료진은 "화상 치료에 긴요한 응급조치 시기를 놓쳤다"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영하 3도에 비까지 내렸다. 폐허 속에서 구호의 손길을 다급하게 기다릴 북녘 동포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답답하다. 무엇보다 큰 상처에도 응급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어린아이들의 처참한 사진은 무엇이 '기본적으로 해결되고 있다'는 건지 북한 당국자의 말을 믿기 어렵게 만든다.

물론 초유의 참사로 경황이 없는 마당에 남녘 동포들의 지원 손길을 그대로 받는다는 게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을 것이다. 궁핍한 살림살이를 드러내야 하는 고민도 있다는 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북한 당국자들은 이제라도 마음을 고쳐 먹었으면 한다.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젠 나라의 체면만큼이나 사람 생명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더구나 '어린이는 왕'이라며 북한 전역의 아동회관을 '학생소년궁전'으로 고쳐 불러온 북한 아닌가.

아무쪼록 6.15 공동선언 이후 4년간 북한이 입버릇처럼 강조해온 '우리 민족끼리'정신이 용천역 참사를 통해 그 진가를 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영종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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