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빨리 빨리 症候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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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내가 아는 친지 한분은 음식점에 가면 종업원에게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질 못해 다른 종업원에게 또 주문한다.음식이 나올 때 보면 주문한 음식이 두배 세배로 나올 때가 있다.이를 지켜보던 친구들이 저마다 성질 급한 것을 나무라지만 정작 그들도 주문한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종업원을 독촉하기는 마찬가지다. 『치토,치토(빨리,빨리라는 네팔 말)….』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우리나라 원정대의 대명사쯤으로 치부되고 있는 이 말은현지의 셰르파들로부터 우스갯소리로 자주 듣는 말이다.한국 사람들은 등정일정을 계획해두고도 그 계획과는 무관하게 『치토 ,치토』한다고 해서 제동을 이렇게 건다.『비스타레,비스타레(천천히,천천히)….』 사회를 주도해나가는 집단들의 성격도 이에 못지않게 1백50% 초과달성이니,2년 공기(工期)를 1년으로 단축해 완공했다느니 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반적 사고나 행동성향이 크게 다르지 않다.바로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회적 성격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아닐까.
필자가 조사한 대학생 5백명의 표본에서 한국인의 사회적 성격으로 다음과 같은 열가지가 지적됐다.첫째,성격과 행동이 급하다.둘째,감정적이고 정이 많다.셋째,정확성이 부족하다.넷째,남의눈치를 본다.다섯째,가족주의 또는 집단주의가 강 하다.여섯째,허세가 심하다.일곱째,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여덟째,변화를 싫어한다.아홉째,내성적이다.열째,권위주의가 강하다.
물론 이 응답들 가운데는 상호모순되는 성격도 있긴 하지만 대학생들이 그들 스스로 갖고 있거나 주변 한국인들이 갖고 있다고느끼는 사회적 성격을 자유롭게 다섯가지씩 적어낸 것을 분석한 것으로 사회적 성격을 유추하는 근거는 된다.
왜 조급해졌을까.원래부터 지니고 있었던 성격은 아니다.우리나라가 경제제일주의 기치를 내걸고 산업화의 길로 접어든 역사와 함께 사회적 성격도 변화하는 속도가 급해졌다고 본다.70년대나80년대의 선행 연구들을 보면 주로 감정적이고 정이 많다는 정서성(情緖性)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회적 성격으로 지적됐던 것으로 미뤄 성급함은 그 이후에 두드러져 나온 것 같다.단시간내 최대의 결과를 얻으려 했던 사회변화의 속성이 급기야는 개인과 집단의 성격까지 급해지고 서두르고 여유를 잃어버린 것으로 대학생들의 눈에 비친 것이리라.
사회적 성격은 개인의 사고.감정,그리고 행동을 좌우할뿐 아니라 사회적 과정을 진전시켜나가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사회변화를 결정해나가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됨을 생각하면 성급한 사회적 성격에 대해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 다.이 성급한 사회적 성격 때문에 지금의 경제적 기반을 이뤘다고 볼 수 있지만,그 결과의 역기능적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궁리를 지금부터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를 중시했던 편법적 속성이 습관화한 결과라면 지금부터라도 바른 법을 존중하고 훈습(訓習)하는길만이 되먹여진 역기능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어떤 것이 근본적이고 말초적인 것인가,무엇이 급하고 덜 급한 것인가,어느 것을 먼저 하고 나중에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을 붙여야 한다.이런 행동습관이 탄탄한 사회적 성격으로 바탕화하면 서둘러서 빚어지는 거품이나 허세.불성실성,그리고 위기관리능력 저하를 어느 정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겐 두가지 큰 죄가 있다고 한다.하나는 너무 성급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일이며,다른 하나는 너무 게을러 에덴동산으로되돌아가지 못하는 죄라고 한다.급할 때 급해야 하고 느릴 때 느려야 하는데,선후가 바뀌고 본말이 바뀐다면 항 상 헛디디게 마련이다.더욱 경계해야 할 일은 성급함 일변도로 모든 행동양식을 삼는 일이다.
이근후 이대교수.신경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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