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정신 물려줘 가난 대물림 막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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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서울대 수의대 2005학번 서명구(23)씨는 7월 학교 홈페이지에서 눈에 띄는 공고를 발견했다. 형편이 어려운 중·고교 학생의 멘토(조언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멘토로 선발된 학생에게는 장학금이 지급된다는 내용도 있었다. 서씨는 지원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서씨는 얼마 뒤 김선동(사진) 미래국제재단 이사장과 면담했다. 김 이사장은 중·고교생을 돕는 서울대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할 기부자였다.

서씨는 경남 고성군에서 자랐다. 과외는 물론이고 학원도 다닌 적이 없다. 그는 “진학을 앞둔 고교 시절,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 누군가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다”며 “그때를 떠올리며 지원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직접 서울시내 고교를 방문해 지도할 학생들을 만났다. 기초수급대상자 등 형편이 어려운 학생 5명을 최종 멘티(조언을 받을 사람)로 결정했다. 그는 “사회로부터 받은 도움을 다시 돌려준다는 건 의미 있고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9일 서울대에서 ‘새싹 멘토링 봉사단’ 발대식이 열렸다. 71명의 서울대생이 멘토로 참여했다. 이들은 각각 5명의 학생을 가르친다. 355명의 중·고교생이 혜택을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 이사장이 연간 7억원씩, 5년 동안 35억원을 지원한다. 멘토 학생 한 명당 400만~8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지급 액수는 ‘형편에 따라’ 학생이 선택하도록 했다. 30% 이상의 학생이 400만원을 선택했다. 장학금 외에 활동비도 지원된다.

이런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장학금을 기부한 김 이사장은 전문 경영인 출신이다. 2007년 5월까지 에쓰오일 대표이사 회장을, 올 3월까지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그는 “스크루지가 돈에 몰입했던 것처럼, 나도 회사의 생존에 몰입해 살아왔다”며 “그러나 효율성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에 가장 필요한 것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사재를 털어 미래국제재단을 세웠다. 재단의 목표는 ‘가난의 대물림을 막자’이다. 그는 “빌 게이츠의 ‘자본주의의 최후 목표는 자선’이라는 말에 동의한다”라고 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불우이웃을 도왔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서, 그들의 아이에 주목했다. 교육과 발전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방치된 아이들에게 가난은 그대로 되물림됐다.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기부의 선순환 구조’다. 넉넉하지 못하지만 뛰어난 머리를 가진 대학생에게 기부하고, 그들이 다시 어려운 형편의 학생을 돕는 방식이다.

김 이사장은 “기부도 경영”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돈으로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돈을 그냥 주는 것은 1차원적 기부다. 기부를 통해 또 다른 자선이 행해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시장 경제 체제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생깁니다. 빈부의 차가 생기는 것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차이를 줄이자고 하향 평준화할 순 없겠죠. 가진 자의 적극적 기부와 자선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글=강인식 기자 사진=서울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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