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지방자치와 정부규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얼마전 서울시청은 정부가 「지방정부」라는 용어를 쓰지 못하도록 함에 따라 영문표기를「Seoul Metropolitan Government」에서「Seoul City」로 바꿨다.Seoul City는 서울시라는 「주소」를 의미하는 말로 시청이란 의미는 전혀 없다.이같은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난데는 정부가 서울시청을 지방자치기능을 제대로 하는 지방정부가 아닌 그보다 못한기관으로 만들려는 잠재의식이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왜냐하면 지방자치란 네가지 자치권능,즉 자치입법권.자치행정권.자치조직권.자치재정권을 가질 때만 가능하며,중앙정부가이같은 권능을 지방정부에 주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지방자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행 지방자치제도하에서 자치단체는 어떤 종류의 조례(條例)를만들 수 있는가 따져보자.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조례제정권이 극도로 제약돼 있다.우선 「법령의 범위내에서…」라고 하여 조례제정의 한계를 법률의 범위 아닌 법령의 범위라고 함 으로써 법률은물론 명령으로도 조례를 제약할 수 있는듯 보인다.여기서 명령이라 함은 법률의 명확한 위임을 받은 경우에 한해 명령은 조례를제한할 수 있다고 봄이 옳다.그런데 현실은 명시적 위임이 없는것까지 규제하는 것이 보통이다.
다음으로 조례제정시 「주민의 권리 제한과 의무부과의 경우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벌금이상 처벌규정의 제정이 불가능하도록 돼 있다.이것은 개정전 지방자치법제20조에서 「3월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의 벌칙 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이 헌법과 상치된다는 죄형법정주의 이론에 밀려 단지 「1천만원이하의 과태료를 정할 수 있다」로 개정됨으로써 조례 위반자를 처벌할 수 있는 권한마저 박탈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주어진 사무를 자기책임하에 처리할 수 있도록 사무처리에 필요한 권한을 가져야 한다.이것이 자치행정권이다.그런데 이것 역시 크게 제한받고 있다.지방자치법 제9조에 따르면모두 6개분야.57가지 사무를 지방자치단체의 고 유사무로 예시하고 있다.문제는 그 단서조항에 고유사무의 대부분이 모두 국가통제 또는 규제를 받도록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예시된 고유사무를「속빈 강정」으로 만든 점이다.
지방분권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을 찾자면 바로 자치조직권이다.
지방정부가 자치를 한다는 것은 하는 일만 자치적으로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일을 하는 조직도 자치적이어야 한다.그러나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조직권은 상처투성이다.지방자치단체 부( 副)단체장을비롯한 주요직책에 국가공무원을 계속 「주둔」시킴으로써 조직의 명령통일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또 지방자치단체의 내부기구 개편을 중앙정부가 계속 규제함으로써 자율적 조직개편이 힘들다.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정원을 중앙 정부가 통제함으로써 인력의 탄력적 활용이 곤란하다.
자치재정권에 대한 규제 또한 심각하다.지방자치가 단순히 말잔치가 아닌 이상 돈이 있어야 한다.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스스로사업을 결정하도록 했으면 사업에 필요한 경비를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는 권능도 함께 부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크게 제약을 가하고 있다.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에 예산편성지침을 내려보내 예산편성과정에서부터 간섭하고 있다.지방세 세목(稅目)은 말할 것도 없고 세율까지 일률적으로 정해버린다.또 지방채발행에 대한 지나친 통제로 지역개발을 위해 좋은 조건의 외자를 도입할 수 있는 길을 막고 있다.
지방분권이란 지방을 중앙으로부터 완전 독립시키거나 중앙과 지방이 동등한 관계라는 의미는 아니다.그러나 양자(兩者)의 관계가 단순한 종속관계라면 그것은 이미 지방자치가 아니다.본격적인지방자치 실시 1년을 맞아 참다운 의미의 지방분 권을 위한 보다 정교한 설계가 필요한 시점(時點)이라고 생각한다.
조창현 한양大 지방자치대학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