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Holic] “자전거 타고 32㎞ 출퇴근 기름값 월 30만원 아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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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영동군 양산면사무소 앞 도로. 자전거를 탄 중년 남성이 짐 실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노인에게 말했다. “무겁지 않으세요. 뭐 실으셨어요?” 노인은 “그냥 이것 저것”이라고 답했다. 노인에게 말을 건넨 사람은 임운경(58) 양산면장. 영동읍 동정리 집에서 근무지인 양산면사무소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다 만난 주민과 얘기한 것이다.

임 면장은 오전 8시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서 35분쯤 뒤 16㎞ 떨어진 면사무소에 도착한다. 귀가할 때도 자전거를 이용한다. 매일 왕복 32㎞(80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것이다.

임 면장이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한 것은 올해 초. 1월 10일 양산면장으로 부임한 뒤 업무로 바쁘다 보니 운동할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궁리 끝에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처음엔 집에 있던 일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다. 그런데 성능이 떨어져 주행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기왕이면 제대로 갖춰 타자”고 마음 먹었다. 선수용 자전거와 유니폼·헬멧을 장만했다.

임운경 면장이 자전거를 타고 면사무소로 출근하고 있다. [프리랜서=김성태]


환갑을 바라보는 면장이 알록달록한 복장에다 헬멧까지 쓰고 다니는 게 한동안 어색했지만 지금은 ‘활력 있는 면장’으로 통한다. 김광용(52) 양산면사무소 직원은 “주민들이 ‘자전거 면장’이라는 별명을 지어줄 정도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면사무소에 도착해서는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일한다. 그러다 관내 순찰이나 주민과의 면담을 위해 외출할 땐 다시 유니폼을 입고 헬멧을 쓴 채 자전거를 탄다.

임 면장은 3월 초부터 5월 중순까지 자전거 덕을 톡톡히 봤다. 산불 발생이 우려되는 기간이라 직원들이 24시간 비상근무를 하며 구석구석 순찰하는데 자전거만큼 편리한 게 없었다. 양산면은 자동차를 타고 순찰하기 힘든 좁은 길이 많은 농촌이기 때문이다.

임 면장은 원래 등산·마라톤 애호가였다. 특히 10년째 즐기는 마라톤 실력은 풀 코스를 10번이나 완주했을 정도다. 영동군청 과장 시절에는 휴일이나 퇴근 뒤 종종 마라톤 연습을 했지만 면장 일을 하면서부터는 근무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임 면장은 “자전거를 탄 뒤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며 “나이가 들어 마라톤을 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자전거 타기가 최고의 운동”이라고 말했다. 자전거 출퇴근 이후 매달 30만원가량 들어가던 기름값도 아낀다. 예전에 타던 SUV승용차는 아주 멀리 갈 때만 이용한다. 임 면장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계획을 세우고 주민을 위한 정책을 생각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신진호 기자 , 사진=프리랜서=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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