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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소련 前군사고문 바실리예프 보고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951년 여름 38선을 경계로 6.25전쟁이 소강상태로 들어가자 소련.중국.북한은 미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이 핵무기를동원,인천상륙작전과 같은 대규모 후방 상륙작전을 감행할 것을 우려해 이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였으 며 이와 관련,휴전협상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은 본사 통일문화연구소 현대사 연구팀이 러시아 국방문서보관소에서 단독 입수한 「김웅이 김일성에게 보낸 보고서」와 1952년 말 「바실리예프(前소련 군사고문단장)가 불가닌에게 보낸 보고서」등 소련측 극비문서를 통해 드러났 다.
1951년 9월30일 김웅(金雄.인민군 1군단장)은 김일성(金日成.인민군 최고사령관)에게 『미군 2사단이 국군 2사단과 활발히 접촉하고 있으며 일본에서 훈련한 187 미군 공수연대가8군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보건대 미군이 동해 안에 집중 상륙을 감행할 것으로 보인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이때는 소련이 휴전협상을 제안한지 3개월 정도 지난 시점으로협상이 본격화되기 전이었다.
그러나 소련측 극비문서에 따르면 1952년에 들어와 소련의 전쟁확산에 대한 우려는 더욱 증폭됐다.1952년 말 소련 군사고문단 바실리예프중장(우리의 소장에 해당)은 불가닌 당시 국방장관에게 『아이젠하워장군의 한국 방문 후 한국전선 에서 미군들의 대규모 공격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긴급 보고서를 보냈다. 그는 한국에서의 장기전은 미국에 이롭지 않기 때문에 미국은 전쟁에 이기기 위해 결정적인 작전행동을 취할 것이며 가장 유력한 방법은 대규모 상륙작전이라고 지적했다.그가 예상한 미군의 상륙 감행 일자는 1953년 4월이었고,상륙지역은 평양 근처의 진남포였다.
또 그의 보고서에는 『중국 지휘부는 상륙작전 감행시 미군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을 예상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정세인식에 따라 중국 군지휘부는 1953년 3월15일까지 미군의 상륙작전에 대비한 모든 사전 조치를 완료할 것을 결정했고,소련고문단은 진남포 방향 방어 강화,포병 예비대 편성등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방어부대 편성 내용을 전 달했다.
소련군사고문단이 예상했던 미군의 상륙작전은 소련과 미국간의 휴전협상이 급진전되면서 수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문서는 핵무기를 동원한 미군의 대규모 공세가 예상된다는 보고에 접한 소련측이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휴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해 준다.
6.25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든 1953년 1월 바실리예프는 스탈린에게 북한에서 소련군사고문단의 철수를 재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전문 내용중에는 『조선 전선상황에 관한 주요 정보수집업무는 전과 마찬가지로 라주바예프대사와 중국내 총군사고문이수행할 것』이라는 구절이 포함돼 있어 소련이 전쟁기간중 군사고문단과 대사관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지시사항을 전달 했다는 사실을 시사해 주고 있다.
모스크바=김재명.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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