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녹색 리더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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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 20면

녹색(green)과 성장(growth)은 얼마 전까지 결코 어울릴 수 없는 개념이었습니다. 서로의 진지에서 상대방을 향해 포탄을 쏘아 대는 적대적인 형국이었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성장, 지속 가능한 성장이란 녹색을 덜 파괴하는 정도였죠. 성장은 주류, 녹색은 비주류로 선이 분명히 그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8·15 기념사에서 ‘녹색성장(green growth)’을 국정 방향으로 천명했습니다. “경제성장과 환경보전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다”는 취지도 설명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풍력·태양열·지열·조력을 활용해 전기를 생산하거나 단열 주택단지를 건설하는 것 등을 염두에 둔 듯합니다. 도저히 나란히 존재할 수 없어 보이던 두 개념이 한 단어로 조합돼 국가 어젠다로 등장한 겁니다.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해 그렇지 녹색성장이란 말 자체는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검색엔진 ‘구글’에서 찾아보면 2002년 월드뱅크에서 이 단어를 쓴 기록이 나옵니다. 국내에 본격적으로 전파한 사람은 정래권 기후변화 대사였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 국장으로 근무하면서 그 의미를 정교화했다고 합니다.
녹색성장의 진정한 산파는 지구온난화와 고유가였습니다.

지구온난화라는 인류 공멸의 위기감과 고유가라는 경제적 필요성이 융합 개념을 탄생시켰습니다. 민주사회의 정치가는 시대의 흐름을 잡으려 애를 씁니다. 이것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여 권력을 잡으려 합니다. 미국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널드 슈워제네거,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같이 후각이 뛰어난 인물들이 ‘그린’을 외치고 있는 건 시대의 흐름을 읽은 결과겠지요. 국내에선 환경분쟁 변호사 출신인 오세훈 서울시장이 ‘녹색 시정’에 정치 생명의 절반 정도를 걸어 놓았습니다.

녹색성장은 아직 불안한 개념입니다. 정치적 구호로 끝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녹색 리더십을 발휘한다면서 마구잡이 투자·사업을 벌여서는 곤란합니다. 공장이나 건설현장과 달리 환경·자연·생명은 천천히 반응합니다. 노무현 정부를 보십시오. 생명공학에 집중 투자했습니다. 결과는 부진했습니다. 황우석 신화 같은 부작용도 튀어나왔습니다. 인내하고 절제하지 않으면 녹색 리더십은 결코 힘을 받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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