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場外의 정치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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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몇 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이런 얘기가 오갔다.
-지금 15대국회는 기네스북에 오를 진기록을 세우고 있고 정치는 3류코미디처럼 되고 있는데,여야 어느 쪽에도 득될 리 만무한 이런 상황이 왜 나왔을까.여야 가릴 것 없이 욕을 먹고 있는 것을 자기네들도 잘 알 텐데 왜 이런 못난 짓을 할까.
-아,정치9단이란 사람들이 왜 그걸 모르겠어.그래도 겉으로 보기에는 다 손해 같지만 그 속에서 득이 있으니까 판을 이렇게만든다고 봐야지.
-매일 파행이니 격돌이니 하는 터에 득은 무슨 득이 있겠나.
-그렇지도 않아.당장 이거 한 가지만 따져 봐요.15대 총선후 정당마다 신인들이 대거 등장해 저마다 새 정치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신인들이 새 정치를 하겠다고 들고 나오면 골치아픈 게 누구겠어.바로 3金씨들이지.국회를 저 모양으로 만들어놓으니까 신인.구인(舊人)이 어디 있나.신인들의 급속한 구인화(舊人化)로 얼마나 편해졌나.
-하긴 그렇군.그러고 보면 잠재적 대선주자라는 중량급들도 정치판이 이렇게 되니 힘써 볼 여지가 없어졌군.
-그렇지.며칠 전 국민회의는 차기인지 차차기(次次期)인지를 바라본다는 머리 굵은 김상현(金相賢)씨에게 「국회사무총장 출석저지조」팀장을 배정했다는 거야.金씨가 말하기를 『3金씨가 우리같은 사람 꼼짝 못하게 하려고 이렇게 몰아 가는 것 아니냐.참담한 심경이다』고 했다더군.
-그렇군.국회 몸싸움에 신인이 어디 있고 대선주자가 어디 있나.「저지조」니 비상대기령이니 하여 한꺼번에 다 「병력」이 돼버리는 셈이지.보스들로선 골치아픈 야심가들을 도매금으로 이미지폭락을 시키는 거군.
-신인도 별 수 없더라,이회창.이홍구.이한동.김상현도 별 수없더라…거참,따지고 보니 절묘한 정치군.역시 9단은 9단이야.
-그러고 생각해 봐요.국회가 무기력해지고 힘쓰는 중량급도 없고 그러면 남는 게 뭐겠어.3金씨만 우뚝하잖아.
-정치가 초토화(焦土化)되면 권력만 남지.청와대.검찰.경찰.
장관,이런 쪽이 힘을 쓰고 세지는 거 아니겠어.
-DJ나 JP도 소위 선거패배책임론이니 제3의 대안이니 하는당내 목소리에 고생했는데 정치판이 이렇게 되니까 그런 소리가 다 쑥 들어갔잖아.
-하긴 공무원들도 국회가 없는 게 편하겠지.행정부로선 즐길 만도 하구만.
-지금과는 반대로 국회가 착착 제대로 돌아가는 상황을 생각해봐요.요즘 한.약분쟁이다,경부고속철도 노선방황이다,가스사고다…조질 일이 얼마나 많아.그런 정책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지고 장관들을 닦아세우고 적절한 대안을 낸다고 생각해 봐 .그럼 국회가금방 정치의 중심이 되잖아.그럴 경우 청와대나 행정부는 상대적으로 왜소해질 수밖에.더구나 임기가 1년8개월밖에 안 남았으니계속 내리막길이지.
-국회파행이 임기말 권력누수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구먼.
-아까 말대로 국회가 제대로 돌아가면 잠재적 주자(走者)나 신인 중에서 정치영웅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치스타가 나올 가능성은다분히 있다고 봐야지.
-그렇지만 정치가 언제까지 요 모양 요 꼴로 갈 수는 없잖아. -정치고수(高手)들이 또 무슨 다른 수를 쓰겠지.하지만 다른 수가 나와 봐야 본질은 달라지지 않겠지.내년 대선 때까지 가는 정치대란(大亂)의 1막(幕)1장(場)이 시작되고 있는 거야. -거,고수,고수 좀 하지 맙시다.고수는 뭐가 고수야.지금우리 같은 보통사람들도 얼추 속을 짐작하는 터에 그게 무슨 고수야.국회를 이 꼴로 만드는 것을 보면 나라보다는 당,당보다는자기를 더 생각하기 때문 아냐.기본적으로 보통사람 만큼의 애국심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이런 게 고수정치라면 백성들이 제일먼저 할 일은 고수배척운동이 될 수밖에 없겠어.
-맞아.명색이 문민정부고,민주화개혁을 한다면서 뭔가 달라져야할 텐데 권위주의 시절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심하지….감옥의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씨가 『우리 때와 뭐가 달라』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구먼.
-도매금으로 「병력」이 돼 버린 중량급이나 신인들 중에서 뭔가 「소리」가 나올 가능성도 있겠지.
-9단들도 이런 판을 오래 끌고 가지는 못할 거야.「여의도의썩은 잔치」를 끝내자는 소리가 좀 높은가.또 그런 분노의 초점이 점차 자신들에게 집중되는 것도 알 테지 뭐.
-다음 수를 봐야겠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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