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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美 교역 가로막힌 진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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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은 미국이 자국의 발전을 억누르고 있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리고 양국 간 무역관계는 고도의 정치적 문제라고 강조한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워싱턴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만들어진 '적성국 교역법'에 따라 북한에 포괄적 제재를 가했다. 이 제재는 제네바 합의 이후인 95년 일부 해제됐고, 장거리 미사일 관련 상호 합의에 따라 2000년 6월 또다시 상당수 풀렸다.

한국과 미국이 가입한 바세나르 체제(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에 따라 '무기로 전용이 가능한 물품'에 대한 금수조치는 유지됐다. 북한과 거래하는 미국 수입업자들은 그 물건이 '미사일 제작과 관련된 북한 기업'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증명과 함께 미 재무부 해외자산과의 사전승인을 얻어야 한다. 조건만 갖추면 수입 허가는 비교적 수월하게 떨어진다. 그러나 미 행정부 관리들은 수입 허가 신청이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전한다. 규제보다 북한의 기업환경이 상호교역에 더 큰 장애라는 게 미국 관리들의 판단이다.

군수 품목에 대한 예외조항과 함께 북한에 수출 또는 투자하는 데 약간의 법적 규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규제는 투명하고 명백한 기준에 따른다.

아직 미국과 북한의 교역은 미미하다. 북한은 미국이 일반무역관행(NTR)을 적용하지 않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북한의 수출은 30년 스무트 홀리 관세법에 의해 설정된 '2종 관세율'이 부과된다. '2종 관세율'에 따르면 북한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섬유 등 노동집약 품목에 가장 높은 비율의 관세가 적용된다. 역사적인 산물이긴 하지만 2종 관세는 분명 심각한 교역 장애물이다.

중국 등 몇몇 국가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덕에 항구적인 NTR 지위를 따냈다. 북한은 그러나 WTO에 가입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이런 무관심은 불행한 것이다. 미국은 2005년 종료되는 다자간 섬유협정(MFA)에 규정된 북한 쿼터에 호의적이지 않다. 그런 점에서 WTO 가입만이 북한을 도울 수 있다.

과거 미국 정부는 WTO 가입국인 미얀마와 섬유 협정을 논의한 적이 있다. 그때 미국은 WTO 가입국과 쿼터 협상을 하느니 차라리 대미 수출량을 늘려주는 게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WTO 가입국들은 이러한 특권을 누린다.

북한은 무역제재도 없는 유럽에서 만성적으로 MFA 쿼터를 채우지 못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그것은 북한의 문제가 무역장벽이 아니라 경쟁력 부재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북한이 일반무역관행 지위를 획득하더라도 미국은 북한을 비시장경제(NME)로 분류할 게 분명하며 중국에 그랬던 것처럼 성가신 반덤핑 규정을 북한에 요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외교관계 개선이 곧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미국은 정치를 무시한 채 경제적 이유에서 보호주의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은 노동권과 지적재산권, 마약 밀매 금지와 관련된 기준의 제약을 받긴 하지만 일반특혜관세제도(GSP)에 따라 몇몇 가난한 국가엔 '우선적이고 일방적인 비관세 특혜'를 베풀기도 한다. 그러나 국제적인 근로기준을 무시하고 있는 북한의 경우 아무리 외교관계가 개선되더라도 GSP 자격을 얻어낼 리 만무하다. 중국은 아직도 GSP 자격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WTO에 가입하면 이 모든 어려움을 상당부분 막아낼 수 있다.

오늘날 북.미 간 교역을 가로막는 것은 법적 규제가 아니라 북한 내부의 조건과 관행이다. 북한은 개혁을 충실하게 추진하고 경쟁력을 키우는 방법을 통해 광범위한 정치적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의 WTO 가입이 보다 유리한 조건이 될 것이다. 북한 관리들이 미국 정책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기는 쉽다. 그러나 자신들의 개혁 노력을 두배로 늘리는 게 보다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마커스 놀랜드 미국 국제경제연구소 연구원
정리=이훈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