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한국추상회화의 정신展 리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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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우리나라 추상미술은 현대미술의 큰 맥을 형성하고 있음에도 일반인에겐 아직도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남아있다.알아볼 수 있는 형상을 찾을 수 없는 화면 앞에서 사람들은 당혹감마저 느끼게 된다.호암미술관의 이번 기획전은 추상미술에 낯선 사람들이좀더 다가서서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전시의 명칭대로 과연 한국추상미술의 독특한 「정신」이라는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그러나 문화의 실체는 주변의 무수한 담론들까지도 포함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한「정신」의 유무를 묻기 전에 그것에 대해 말하 여진다는 것 자체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작품 보다도 오히려 그것에 대한 해석들이 우리의 특수한 시대,사회적 조건을 반영하는 것으로서의 예술정신이란 것을 드러내는 단서일 수도 있다.
우리의 추상미술은 추상과 구상이라는 구분을 벗어나 있다는 역설 속에 그 독특함이 있다.대상과 비대상의 대립항을 설정하고 강박적으로 대상의 세계를 지워온 것이 서구추상미술의 역사라면 한국의 미술가들은 소위 정신성이나 화면의 자율성을 성취하기 위해 굳이 대상의 형태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번 전시작 중에도 하나의 형상이나 필획이 형태와 의미의 효과를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와같은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것은 자연을 대상의 외형 속에 내재된 원리인 동시에원리를 함축한 외형으로 이해하는 동양의 자연관에서 유래한 것이다.여기서 지향하는 자연과 나의 관계는 대결이라기보다 만남으로서의 그것이다.한국의 추상미술에서 「자연을 떠난다」는 의도와 「자연의 본질을 발견한다」는 추상의 사전적 의미중 후자 쪽이 강조되는 것도 이와같은 자연관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자연에 다가가는 태도는 주지적이라기보다 정감적이며 또한 절제를 수반한 깨달음의 과정과 같다.반복적인 행위를 통한 신체와 물질의 만남이 본질이 되는 모노크롬 회화는 이와같이 주.객의 이분성을 벗어난 상태를 향해 가는 과정의 산물이다 .
서구의 다양한 경향의 유입에도 불구하고 자연에서 출발한 주정적인 경향이 한국추상미술의 주류를 형성한 것은 외래의 것을 자신의 체질에 적합한 양식으로 재해석하려는 우리 미술가들의 의도에서 온 것임을 상기하면서 「추상」에 대한 우리만 의 「정신」이란 것의 가능성에 대해 한층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윤난지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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