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영 기자의 글로벌 인터뷰] ‘동북아국가연합’한국이 주도적 역할 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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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 14면

-최근 중남미국가연합(UNASUR)이 결성됐다. 세계의 지역 통합 조류에서 아시아가 뒤처지고 있다고 볼 수 있나.
“그런 것은 아니다. 무역·경제 통합 차원에서 아시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럽연합·아프리카연합·중남미국가연합 같은 공식 기구는 없어도 다른 지역들이 아시아를 부러워할 정도로 잘하고 있다. 당분간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한국·중국·일본)의 발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효율성 측면에서 일단 참가국 규모는 현 수준이 좋다고 본다.”

‘아시아의 토인비’ 키쇼르 마부바니 싱가포르국립대학 공공정책대학원장

-아세안 없이도 소강국(小强國)인 싱가포르의 활기찬 경제력은 유지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니다. 아세안은 중요하다. 1990년대까지도 동남아는 아시아의 발칸반도라고 불렸다. 동남아는 분쟁, 발칸반도는 평화가 예상됐다. 역사적 결과는 그 반대였다. 아세안이 싱가포르 등 지역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동북아도 ‘동북아국가연합’을 창설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나.
“시도해 볼 만하다. 문제는 동남아보다 국가 간 상호 불신이 강하다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 사이에 갈등이 내재돼 있고 북한도 통합을 복잡하게 만드는 변수다. 중국이 역내 통합을 주도하면 의구심을 야기시킬 것이다. 나는 한국이 이룩한 급격한 발전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한국의 성공적 모델에는 다른 나라들이 참고할 만한 점이 많다. 한국은 동북아에서 상대적으로는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오히려 동북아국가연합을 주도할 수 있다. 아세안도 큰 나라인 인도네시아가 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에 역할을 인정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중국이나 일본이 그런 역할을 한국에 허용할 것으로 보나.
“한국이 지도자(leader)가 되려고 하면 반발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싱가포르의 경우처럼 통합 촉진자(facilitator) 역할에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제한하면 가능할 것이다.”

-싱가포르와 주변국 사이엔 잠재적인 적대 감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동남아에서 중국계가 다수인 유일한 국가인 데다 다른 나라들보다 경제적으로 앞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싱가포르는 어떻게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
“싱가포르의 정치적 의도에 관한 의혹은 주변국들 사이에 어느 정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한국은 동북아 통합을 위해 싱가포르-아세안 관계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의 외교력은 세계 최상급이다. 모든 강대국·이웃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중국에 필요한 세계전략은 무엇인가.
“중국은 저자세(low profile)를 유지해야 한다. 서구의 의구심 때문이다. 중국은 느린 속도로 신중하게 나아가야 한다. 덩샤오핑의 정치적 유언도 중국이 패권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중국은 아직 막강한 서구를 의식해 발톱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중국에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의도는 없다고 본다. 중국은 국내 문제가 산적한 나라다. 공산당 체제도 언젠가는 바뀌어야 한다. 여력이 없다. 게다가 중국은 지금 국제적으로 존중받고 있다. 굳이 지배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

-미국의 경우 19세기부터 강대국으로 부상했으나 제1, 2차 세계대전에 뒤늦게 참전하는 등 ‘마지못해’ 초강대국이 된 측면도 있다. 중국도 비슷한 역사적인 경로를 겪지 않을는지.
“중국이 강대국이 되는 것은 일단 확실하다. 문제는 국제 체제의 규칙이다. 19세기에는 영향력을 확대하고 강대국이 되려면 독일이나 일본처럼 전쟁을 해야 했다. 양국은 전쟁에서 졌지만 강대국으로 다시 부상했다. 이때는 전쟁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규칙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중국도 현 국제 무역 체제에서 번영하고 있다. 중국과 아시아의 목표는 서구의 성공을 재현하는 것이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이 1등이 돼도 인도·미국·일본·유럽연합 등의 경제력은 막강한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다. 전후에 형성된 자유주의적 국제 경제 체제를 중국이 바꿀 이유는 없을 것이다.”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19세기식’ 아닌가.
“달라이 라마도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가 바라는 것은 자치다. 중국과 티베트의 입장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양측은 이러한 공동의 인식을 바탕으로 현재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중국의 부상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느끼는 위협이 적지 않은데.
“중국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이해당사국(responsible stakeholder)’으로 기능할 것이다. 중국의 상승은 아시아 다른 나라들에도 이득이었다. 중국은 향후 역내 자유무역협정 체결 등 경제 문제에 집중할 것이다.”

-역사가 19세기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남아 있지 않은가. 중·미 관계 악화로 한국이나 싱가포르가 중국과 미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는 않겠는가.
“그런 상황을 피해야 한다. 바로 그래서 외교가 중요하다. 국제 정세의 변화에 대비해 한국은 아세안을 연구해야 하며 아세안을 이용해야 한다.”

-대중화지구(大中華地區, Greater China)에 관한 논의가 있다. 중국·홍콩·마카오·대만을 포괄하는 권역이다. 앞으로 정치적인 실체로 등장할 수 있는 데다 이미 문화적 권력으로 떠오른 상태다. 몽골과 싱가포르까지 대중화지구에 포함되기도 하는데.
“싱가포르는 싱가포르다. 싱가포르 인구의 다수가 중국계인 것은 사실이지만 싱가포르는 동남아의 일원이다. 대중화지구에 포섭되는 것은 싱가포르에 정치적인 자살이다. 싱가포르는 중국과 대만, 베트남 등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스프래틀리 군도 문제에 있어서도 아세안 입장에서 목소리를 낸다. 중국 편을 들지 않는다.”

-중국 지도자들의 연설문을 분석해 보면 사회주의 색채가 강하다. 학교에서도 아직 마르크스주의를 가르친다. 중국의 공식 이념과 실천의 격차를 어떻게 봐야 하나. 상황이 바뀌면 중국은 사회주의를 강하게 내세울 수도 있다고 보나.
“중국은 공산당이 다스리는 나라다.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은 사회주의에서 나온다. 그러나 국가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평가해야 한다. 80년대만 해도 호텔 책상 서랍에는 마오쩌둥의 어록이 담긴 빨간 소책자가 있었다. 요즘에는 중국 투자 유치 홍보 책자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공식 이데올로기와 실천 사이에 격차가 있다. 유럽·미국은 자유무역을 내세우지만 막대한 농업 보조금을 지원한다. 그런 면에서 모든 국가는 위선적이다.”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독립 시도를 둘러싼 그루지야 사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러시아는 신냉전을 유발할 것으로 봐야 하나. 저명 미래학자 존 네이스빗은 민족국가 수가 1000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는데.
“두 관점 다 틀리다고 본다. 네이스빗은 중국·인도·인도네시아 등 큰 나라들의 국가 통합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몇 개 지역은 독립에 성공하겠지만 그 수가 800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그루지야 공격은 지난 20여 년간의 굴욕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구에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도 러시아가 신냉전을 바란다는 식의 서구 시각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제를 일으킨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이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 중 어느 쪽이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게 국제사회를 위해 낫다고 보나.
“둘 다 일장일단이 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세계 반미주의의 반은 희석되고 세계 각국의 미국에 대한 감정은 상당한 정도로 우호적이 될 것이다. 반면 세계 자유무역 체제를 위해서는 매케인이 더 낫다.”

-매케인 후보가 미국의 민주 우방으로만 구성된 ‘민주국가연맹(League of Democracies)’을 창설해 국제정치의 핵심 기관으로 삼으려 하는 구상을 제안했는데.
“역사상 보기 힘든 미련한 구상이다. 서구의 세계 지배를 위한 마지막 몸부림으로 비치기도 한다. 한국·인도·일본 등이 소위 ‘민주국가연맹’에 자동으로 가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키쇼르 마부바니는…
1948년 파키스탄 이민자의 아들로 싱가포르에서 태어났다. 싱가포르국립대를 1971년 졸업한 후 외무부에 들어가 2004년까지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그는 주 유엔 싱가포르 대사를 두 차례(1984~89, 1998~2004) 역임했다. 2001년 1월과 2002년 5월에는 유엔 안보리 의장직을 맡았다. 2004년 싱가포르국립대 공공정책대학원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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