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주 빅뱅의 비밀 풀 60억 달러짜리 열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7호 10면

1929년 미국의 과학자 에드윈 허블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발견으로 우주는 한 점에 불과하던 때가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때 우주는 무한한 밀도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주 대폭발(빅뱅·Big Bang)이 일어나면서 우주의 팽창이 시작됐다. 이 팽창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만일 인간이 빅뱅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 낸다면 우리는 우주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을지 모른다. 우주는 아직 ‘신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신에 대한 끝없는 인간 도전의 역사가 신기원을 맞게 된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9월 10일 인류 역사 최대의 실험장치인 강입자가속기(LHC·Large Hadron Collider)의 가동에 들어간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9월 10일 강입자가속기 가동

기존보다 7배 큰 에너지로 충돌

LHC는 원형 모양의 가속기로 직경 8㎞에 총길이가 27㎞에 달한다. CERN의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와 프랑스 국경 지대 주라산에 걸쳐 지하 평균 깊이 100m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LHC 건설엔 15년간 60억 달러(약 6조원)가 들어갔다.

LHC는 빅뱅 직후와 유사한 조건에서 양성자를 충돌시키는 장치다. 이 충돌 실험을 토대로 과학자들은 우주 진화 과정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성자가 영하 271.3도(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도를 극도로 낮춤)에서 만들어진 초전도체의 자기장에 의해 가속되면서 7조 일렉트론볼트(TeV)의 에너지를 얻게 되면 충돌이 이뤄진다. 이는 실생활에선 모기가 날아가는 데 필요한 정도의 에너지에 불과하지만 워낙 크기가 작은 양성자가 이 정도의 에너지를 갖게 되면 거의 빛의 속도(초속 30만㎞)로 질주할 수 있다. 7TeV의 에너지를 가진 양성자를 마주 충돌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14TeV의 에너지로 충돌시험을 하는 셈이다. 이는 기존에 가장 규모가 큰 입자 가속기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보다 7배 크다.

참고로 고유 성질을 간직하는 물질 구성의 최소 단위인 원자는 양성자·중성자로 이뤄진 원자핵과 원자핵의 주변을 떠돌아 다니는 전자로 구성돼 있다. 만약 원자의 직경이 10㎞라면 양성자·중성자 직경은 10㎝ 정도 된다. 양성자와 중성자를 구성하는 소립자 쿼크의 직경은 0.1㎜에 해당한다.

‘신의 입자’ 힉스 존재 규명될까

이런 양성자를 빅뱅과 유사한 조건에서 충돌시키면 쿼크 등 기존에 발견된 소립자들과 함께 우주 탄생의 순간에 방출된 미지의 소립자들도 튀어나올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자들은 미지의 소립자 중에서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Higgs) 입자’를 발견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어떤 입자는 질량이 0이고, 어떤 입자는 질량을 갖고 있는 데 대한 설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표준모형 이론에 따르면 ‘힉스 메커니즘’이 입자가 질량을 갖게 해준다(힉스는 이 이론을 제시한 영국의 물리학자). 힉스 메커니즘이 맞다면 힉스 입자가 존재할 것이며, LHC의 충돌 실험에서 이를 찾아낼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힉스 입자가 발견된다면 물리학계의 숙원을 풀어줄 대단한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LHC 실험은 또 신비에 쌓인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현재 우주에서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구성 물질은 전체의 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암흑 물질(23%)과 암흑 에너지(73%)로 채워져 있다. 암흑 물질은 관측은 안 되면서도 질량을 갖고 있는 반면 암흑 에너지는 진공 상태에서 에너지 형태로 존재할 뿐이다.

이번 실험은 반물질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물질과 반대되는 전하를 띤 물질을 반물질이라고 한다. 자연에 대칭성이 완벽히 존재한다면, 이론상으로 빅뱅으로 물질이 만들어질 당시 동일량의 반물질이 만들어졌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자연은 그렇지 않다. 왜 물질과 반물질이 비대칭적으로 생겼는지도 LHC 실험이 풀어야 할 숙제다.

또 이번 실험에선 수많은 초소형 블랙홀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양성자의 충돌 순간 발생하는 강력한 에너지 때문이다. 이 경우 먼 우주에 있는 블랙홀과 유사한 형태를 실험실에서 직접 관찰할 수 있게 된다.

6가지 검출장비가 입자 잡아내

LHC 실험이 제대로 성과를 얻기 위해선 가속기 외에도 첨단 검출기가 필요하다. CERN은 힉스 입자 등을 잡아내는 데 필요한 ATLAS·CMS 등 크고 작은 검출기 6대를 설치해 놓고 있다. 가장 큰 검출기인 ATLAS는 높이와 폭이 각각 25m, 길이 46m로 무게가 7000t이나 나간다.

검출기와 함께 중요한 것은 쏟아지는 데이터를 분석할 컴퓨터다. 충돌 실험을 할 때마다 연필심 모양의 빔 형태로 충돌하는 양성자 다발 속엔 3000조 개의 양성자 입자가 들어간다. 워낙 크기가 작아 이들 중 실제 충돌하는 것은 초당 6억 개 정도에 불과하지만 여기에서 나오는 데이터는 어마어마하다. 아무리 용량이 크고 처리속도가 빠른 컴퓨터라도 감당할 수 없다. 이 때문에 CERN은 세계 곳곳에 있는 컴퓨터를 하나로 연결해 쓸 수 있는 ‘그리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큰 용량의 전원이 필요할 때 여러 배터리를 연결하듯 세계 공동 연구자들의 컴퓨터를 연결해 쓰겠다는 것이다. CERN 측은 그리드가 실현되면 세계 컴퓨터 간 소통을 가능하게 한 월드와이드웹(WWW)보다 더 큰 컴퓨터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WWW도 CERN이 세계 물리학자와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1989년 개발한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