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오바마는 우리의 후보 … 뭉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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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랑스러운 민주당원이며, 자랑스러운 오바마 지지자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펩시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민주당 전당대회장. 대회 이틀째인 26일 저녁(현지시간) 연단에 오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연설 첫머리부터 당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에 대한 화끈한 지지를 보냈다. 이 순간 당원 등 2만여 명이 모인 청중석에선 ‘힐러리’를 연호하는 환호성이 쏟아졌다.

이날 미 유권자와 언론은 힐러리를 주목했다. 전당대회 준비 과정에서 힐러리와 오바마 진영이 갈등을 일으켰고, 그걸 언론이 집중 보도하면서 당내에선 단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던 터였다. 그런 가운데 힐러리가 등장했다. 오렌지색 바지 정장을 입은 그가 딸 첼시의 소개로 연단에 서자 대회장엔 ‘힐러리’라고 쓰인 흰색 피켓의 물결이 일었다.

힐러리는 오바마 지지자라고 선언하고 나서 “이제는 하나의 목적을 가진 하나의 당으로 단결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우린 같은 팀이다. 우리 중 누구도 외곽에서 (방관자로) 앉아 있을 순 없다”고 했다. “오바마는 나의 후보이며, 그는 반드시 대통령이 돼야 한다. 우린 한순간도 놓칠 수 없으며, 한 표도 아껴선 안 된다”고도 했다. 이때 ‘힐러리’의 흰색 피켓은 거의 사라지고 ‘단합’이라는 푸른색 피켓이 대회장에 가득 물결쳤다.

힐러리는 “여러분이 더 실패한 리더십(공화당 정권의 연장)으로 고통받으려고 지난 18개월간 (당 경선을 위해) 열심히 뛰었고, 지난 8년을 견뎌온 게 아니다”며 “결코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공화 당 후보인) 매케인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오바마 부인 미셸을 포함한 대다수 당원은 기립박수를 치며 폭소를 터뜨렸다. 몬태나주에서 TV를 통해 힐러리의 연설을 지켜본 오바마도 이 대목에서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힐러리는 매케인을 “동료이자 친구”라고 부르면서도 그의 집권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의 연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시와 매케인이 다음주 쌍둥이 도시에서 함께 자리한다. 둘을 구분하긴 대단히 어렵다”고 했다.

공화당이 다음달 1일부터 미네소타주의 쌍둥이 도시인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에서 개최하는 전당대회에 빗대 부시와 매케인을 쌍둥이로 지칭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청중은 다시 박장대소했다.

미국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26일 덴버 전당대회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당원들은 ‘오바마’ ‘힐러리’ ‘단합(unity)’이란 글이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며 환호했다. [덴버 AFP=연합뉴스]


힐러리는 “오바마가 백악관에 가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미국의 노동자를 보호할 것”이라며 “빌 클린턴 대통령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민주당원은 일을 할 줄 안다”고 강조했다. 그걸 들은 남편 클린턴은 눈물을 살짝 글썽이며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힐러리가 연설을 마치자 오바마는 즉각 힐러리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오바마는 “너무 강렬한 연설이었다. 힐러리는 역시 걸출하다”고 인사했다고 참모 로버트 깁스는 전했다. 경선을 포기하고 오바마를 지지했던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는 “힐러리의 연설로 당은 단합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P통신은 “당 지도자들은 27일 대통령 후보자 호명 투표가 실시되는 과정에서 힐러리 지지자들이 시위를 하고 그게 TV 화면으로 되풀이 방영될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은 호명 투표에서 분열상이 노출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제한적인 숫자의 대의원만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이들이 오바마와 힐러리에 대한 호명 투표를 끝내고 나면 남은 대의원들은 만장일치 방식으로 오바마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다는 시나리오를 짜놓고 있다.

덴버=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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