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감동시킨TV프로>93년 MBC작 광복특집 '김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93년8월 광복절 특집으로 방영된 MBC다큐멘터리 『잃어버린역사를 찾아서-김산,홍진에 묻힌 불꽃삶』은 시인 이육사의 장중한 시구로 시작된다.
『잃어버린…』은 그렇지 않아도 다큐멘터리광인 나의 관심과 시선을 붙잡는 소재부터 특별했다.중국 항일투쟁 당시 조선 출신의사회주의 혁명가로 조국 해방을 위해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김산의 생애를 재조명한 이 다큐멘터리는 역사에 대 한 나의 인식을 한층 심화시켜주었다.
『잃어버린…』은 사회주의 혁명가의 삶을 국내 방송으로선 처음다룬다는 사실로 인해 방송 전부터 화제가 되기도 했다.또 하나의 금기를 깬 셈이다.
사실 김산은 이념의 굴레 때문에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인물이다.
93년초에 들어선 새정부의 입장 변화와 취재를 맡은 보도국 조헌모기자의 노력으로 중국 혁명의 마지막 보루가 연안의 홍진을툭툭 털고 우리 앞에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단 한장의 빛바랜 흑백사진을 들고 제작에 뛰어든 제작진의 열정이 어느 정도였던가를 완성된 작품을 통해 가늠할 수 있었다.
아마 사진 속 인물 김산의 역사를 꿰뚫는 듯한 형형한 눈빛 하나에서 메시지를 받아 이 작품을 만들어낸게 아닌가 싶다.
『잃어버린…』의 텍스트는 님 웨일스의 『아리랑(SONG OFARIRANG)』이다.아그네스 스메들리와 함께 30년대 홍군의대장정을 취재한 전설적인 여기자 웨일스는 김산을 20여차례 인터뷰한 뒤 『아리랑』을 출간했다.83세의 할머 니가 된 그녀를브라운관에서 만난 것도 내게는 충격이었다.
『잃어버린…』은 상하이와 옌안등 김산의 행적을 따라가며 중국혁명의 힘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을 막고 조국 해방을 이루려했던 김산을 고스란히 복원해낸다.
다큐멘터리의 말미는 서른세살 생애의 막바지에 그가 남긴 핏줄고영광(양부의 성을 땄음)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진다.중국 정부의 공무원으로 어쩔 수 없는 「중국인」인 그가 『내 아버지는 진정한 혁명가였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는 잃어 버린 역사를 찾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MBC아나운서실 차장〉 손석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