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가슴뭉클한 감동 조용한 흐느낌 "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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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연극 『어머니』(이윤택 작,김명곤 연출)가 공연되고 있는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선 공연도중 객석 이곳저곳에서 작은 움직임이포착된다.조심스럽게 가방을 뒤져 손수건 혹은 휴지를 찾아낸 관객들은 어느새 붉어진 눈을 쿡쿡 찍어 누르고 있 다.
울지 않고 들을 수 있는 어머니 얘기는 없을까.한평생 품어온신주단지를 깨뜨려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은 어머니 얘기가 객석에 가슴뭉클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각기 강한 개성을 갖고 극단을 10년간 이끌어온 이윤택(연희단 거리패 대표)과 김명곤(극단 아리랑 대표)이 『어머니』를 함께 만든다고 했을때 연극계의 반응은 사실 기대반 의구심반이었다.두 사람의 조화는 바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관객들이 만난 『어머니』는 그들이 치열하게 추구해온 전통과 현대예술양식의 조화처럼 극과 연출이 자연스럽게 맞물리고 녹아든 무대였다.
『어머니』가 빛바랜 사진첩을 들춰내듯 찾아 그려낸 어머니의 모습은 우아하거나 인자하기만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그는 억센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촌스런 시골 처녀였다.자기 이름이 「황일순」이라고 우길 줄은 알지만 이름을 한번 써보라 면 멈칫하다 『길쌈과 부엌일은 배울 만큼 배웠다』고 맞받아치는 그런 「가시내」다. 그러나 그는 논 세마지기에 팔려(?) 옷보따리 하나,신주단지 달랑들고 일본에서 깡패짓하다 돌아온 돌이에게 시집갔다.『일순아』하고 외치며 마을어귀까지 따라나온 남자친구 양산복을뒤에 둔 채로.
양산복은 끝내 그의 가슴에 남모를 비밀로 남는다.해방정국,6.25전쟁등 피할 수 없는 큰 물결에 휘말리면서 그는 첫사랑 양산복의 죽음을 겪고 열병으로 죽은 어린 아들을 가슴에 묻는다. 전통적 소리와 몸짓으로 채워진 무대는 어머니 가슴에 켜켜이쌓인 정한(情恨)을 거르고 걸러내 그려낸 맑은 풍경화 같았다.
특히 어려서 죽은 아들의 넋을 위로하는 굿판은 극적으로 가장고조된 대목으로 가슴뭉클한 감동을 불러일으켜 많은 관객들을 눈물짓게 했다.
나문희씨가 거칠면서도 여리디 여린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내고 「똑순이」 김민희의 소리와 연기는 감탄을 자아낼 만큼 무르익어있다. 이 때문인지 『어머니』공연장에는 20대 관객들로 붐비는대학로의 다른 공연장에 비해 20대부터 60대까지 남녀관객이 골고루 섞여 있다.가족단위의 관람객도 적잖다.
동숭아트센터 기획사업부장 이유리씨는 『주말엔 중.장년 관객이더욱 많다』면서 『남성보다는 여성관객이,특히 나이가 든 관객일수록 더 많이 눈물짓는다』고 귀띔했다.
공연은 6월16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741-3391.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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