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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달라져야한다>6.정부감시.예산심의 겉■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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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해 12월초 96년 예산안을 막판 조율하는 국회계수조정소위.소위장 문앞은 『우리 지역구 예산좀 꼭 반영시켜달라』며 소위위원들에게 부탁하는 동료 국회의원들의 쪽지가 부지런히 전달되느라 북새통을 이뤘다.
소위 회의장 내부는 이들의 청탁을 받은 소위위원들과 홍재형(洪在馨)경제부총리간의 입씨름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이것을 꼭 예산에 포함시켜요.』『안됩니다.재정경제원인들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줄 아십니까.』 옥신각신 끝에 광주출신 의원들의 끈질긴 요구사항인 광주지하철 조사비가 예산안에 계상됐다.대전출신 의원들도 『광주만 봐주기냐.대전지하철도 포함시켜달라』고 요구,관철시켰다.회의장 밖에서는 예산삭감을 소리높여 요구하지만 밀실에선 팽창예 산을 촉구하는 의원들의 두 모습이다.
당시 소위위원이던 신한국당 조용직(趙容直.현재 자민련총재 특보)전국구의원은 「미스터 지하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洪부총리가 붙여준 별명이다.송파지역 출마를 노리고 있던 趙의원은 송파~성남간 지하철 공사비 4백50억원을 따내느라 洪 부총리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졌기 때문이다.결과는 「형평」을 이유로 洪부총리가 굴복했다.
그보다 석달전인 9월27일 재경위 국정감사.의원들은 洪부총리를 향해 거의 반말투로 『이거 뭐야.총선용 팽창예산이잖아』라고총공세를 퍼부었다.
그런데 정작 국회예산심의 첫 단계인 상임위별 예비심사를 거치면서 의원들은 오히려 6천4백억원을 증가시킨채 예결위에 넘겨버렸고 계수조정소위에서도 지역구 예산 따내기에 혈안이 된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상임위 증액분은 다른 해에 비해 2~4배나 높았다.게다가 예결위에서는 4백10억원만을 삭감,13대 국회이래 천억원대 삭감에서 처음으로 백억원대 삭감에 불과한 진기록을 수립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여야가 해마다 예산을 정치현안처리의 볼모로삼아왔다는 사실이다.정기국회는 버릇처럼 정치현안을 둘러싼 여야의 티격태격으로 파행을 겪어왔다.14대 국회 들어서도▶92년 한준수(韓峻洙)전 연기군수의 양심선언등 관권선거 시비와 정보사땅 사기사건▶93년 율곡비리▶94년 인천세무비리와 성수대교 붕괴등 각종 대형사고▶지난해엔 전직대통령 비자금파동으로 예산처리는 뒷전이었다.
국회는 이들 사건으로 휴회를 거듭하다 예산처리 마감일이 닥쳐야 예산및 추곡수매문제와 연계해 어물쩍 넘어가곤 했다.정말 눈에 불을 켜고 사업의 타당성,완급과 경중을 가려야 할 예산안심의가 가장 엉터리.졸속심사로 끝난 것이다.미국의회 가 연방정부기능의 부분적 마비를 마다않고 예산안을 엄정하게 심의하는 자세와는 천양지차다.예산처리가 이러니 결산처리는 말할 것도 없다.
지난해 국회법제예산실의 지적을 보자.
『국방예산중 94년으로 이월됐던 3천9백25억원중 3백13억6천2백만원이 95년 예산으로 재이월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94년 집행예산중 전용액도 7백82억2천5백만원에 달하는등 사업별 집행소요자금 산출이 부적절하고 불용액은 1천5 백3억3천만원으로 정부 소관부처별 세출예산 총불용액의 38%나 차지했다.
』 정부의 엉터리 예산추계나 불합리한 예산집행에 대한 지적들이다.그러나 의원들은 이 대목을 통과의례식으로 한마디 걸칠뿐이다.의원 구속건이나 야당 탄압문제처럼 심각하게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 국정감사로 대표되는 국정감사도 겉하기이긴 마찬가지.94년 국감을 통해 국회의원들이 정부에 시정처리를 요구한 사항은 1천2백74건.그러나 95년 정부가 『처리했다』고 밝힌 건수는22%인 2백80건에 불과했다.나머지는 추진중이거나 한번 검토해 보겠다는 정도에 그친 것이다.
특히 『한번 검토해 보겠다』고 무성의하게 밝힌 건수는 40.
7%인 5백19건에 달한다.5백19건에 대한 제재조치가 없음은물론이다.그냥 넘어간다.
여기에는 의원들의 무리한 요구도 한몫 한다.『93~94년 문화체육부의 수발문서 사본전체를 가져오라』는 등의 어처구니 없는투망식 요구들이다.감사기간 향응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피감사기관에선 저녁 술자리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의원들의 국감출석률도 저조하다.13대 국회때 84.2%이던 것이 14대 들어서는 83%로 떨어졌다.특히 93년 86.1%,94년 84%,95년 81.2%로 하강세다.더욱이 95년은 통일안보문제가 심각했음에도 통일외무위의 출석률은 55.6%로 최저를 기록했다.
몸소 현장검증한 건수도 거의 전무한 상태며 상당수 기관은 유인물로 감사를 대신하거나 여러기관을 묶어 「나리행차」식으로 대충대충 넘어가기도 한다.
법제예산실 김승기(金勝基)조사관은 『정부의 예산집행감시등 정부제재가 전혀 없다고 할 정도로 무방비상태』라고 안타까워 했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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