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타민] 일조권 가치는 ‘침해 시간X집값의 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김모씨는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연립주택에서 10여 년간 살아왔다. 그런데 2003년 주변 지역이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다. 올해 1월 연립주택 남쪽에 지상 9~20층 높이의 아파트 6개 동이 들어섰다. 주변에 큰 건물이 없었는데 아파트가 들어서자 햇볕이 예전보다 들어오지 않았다. 김씨 등 이웃 주민 21명은 재개발조합과 아파트 건설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일조권을 침해당했다는 이유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판사 임채웅)는 “조합은 김씨 등 일조권 침해가 인정되는 10명에게 300만~7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내리면서 일조권 배상액 산정의 기준을 제시했다.

일단 동짓날을 기준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조권이 완전히 침해당했을 경우 집값 하락률이 8%라는 감정서를 손해 산정의 기본으로 삼았다. 일조시간 침해 한 시간당 집값의 1%씩 손해를 본다고 계산한 셈이다. 또 최소한 보장받아야 하는 일조시간을 하루 4시간으로 봤다. 배상액은 집값에 시간당 하락률 1%와 최소 보장 일조시간보다 침해된 시간을 곱해 산정했다.

예를 들어 1억원짜리 주택의 일조시간이 7시간에서 1시간으로 줄어들면 최소 보장 일조시간에 못 미치는 시간은 3시간이다. 따라서 1억원에 3%를 곱하면 300만원의 배상금이 나온다.

최소 보장받아야 하는 일조시간을 하루 ‘4시간’으로 제한한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한쪽 당사자의 일조권만 강조하다 보면 자칫 인근 토지 보유자들의 토지 사용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일조권 피해에 대해 세입자도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고, 배상액은 소유자와 실제 거주자 사이에 분배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일조권 침해로 인한 정신적 피해는 배상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건설사에 대한 배상 청구도 기각했다. 건설사는 아파트 건설을 대행할 뿐 조합과 공동 사업 주체로서 이해 관계를 같이하며 아파트를 지은 게 아니라는 이유였다.

박성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