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네거티브’의 유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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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 22면

미국 대선 결과는 정당 조직보다 후보의 이미지에 따라 좌우된다. 선거 전문가들이 후보를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선거판이 요동친다. 특히 미 대선에서 정치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관전 포인트 <5>-정치 광고

1950년대를 기점으로 정치광고는 선거 캠페인의 꽃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28년 대선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새로운 매체인 라디오를 이용해 경제공황에 허덕이던 미국인에게 꿈과 신념을 불어넣으며 승리를 움켜쥐었다. 48년 대선에서 해리 트루먼이 처음으로 TV 광고를 했지만 TV 보급률이 3%에 불과해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TV 보급률이 45%에 이른 52년 대선은 TV 정치광고의 효시로 불린다. 이 선거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미국에 답한다(Eisenhower Answers America)’라는 광고 메시지로 당선을 확정 지었다. 당시 150만 달러라는 사상 초유의 비용을 썼다.

대선 후보들이 TV 광고에 쏟아 붓는 돈뭉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오바마·매케인·힐러리는 당내 경선 과정에서 1억5000만 달러를 선거광고에 지출했다. 이는 2000년 대선 예비 후보들이 지출한 총선거비용 4억4000만 달러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선거자금 모금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한 오바마는 예비선거 이후에도 3900만 달러를 선거광고에 썼다. 매케인의 반격도 만만치 않아 2900만 달러를 썼다. 위스콘신대 광고프로젝트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6월 4∼26일 오바마의 광고 건수는 6만5312건으로 5만6453건의 매케인에 비해 무려 9000건이 많다.

오바마와 매케인의 선거광고를 아우르는 구호는 각각 ‘믿을 수 있는 변화(Believable Change)’와 ‘평화(Peace)’다. 경륜 부족을 커버하려는 오바마와 부시 정부와의 정책적 단절을 꾀하려는 매케인의 심정이 물씬 묻어 나는 슬로건이다. 이들의 선거광고를 들여다보면 쫓기는 자(오바마)와 쫓는 자(매케인)의 대결 구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바마 선거광고의 80%가 포지티브 광고인 반면 매케인 측은 100% 가까이 네거티브 광고였다. 이달 초 오바마를 ‘사이비 메시아’와 ‘쭉정이 연예인(celebrity)’으로 힐난한 네거티브 광고는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매케인은 집요하게 오바마의 대통령 직무수행 능력을 불신하는 광고들을 쏟아내고 있다. 7일 매케인이 내보낸 네거티브 광고는 오바마 진영을 극도로 자극했다. 이 광고에서 공화당은 “매케인은 백악관에 가져갈 평생의 경험을 갖고 있지만 오바마는 2002년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연설을 한 것이 고작”이라는 힐러리의 발언을 전면에 부각시켰다.

이에 발끈한 오바마 측은 매케인을 부시의 ‘정책 쌍둥이’로 묘사한 광고를 만들어 역공했다. 매케인은 네거티브 광고를 통해 열세였던 선거구도를 뒤엎는 데 성공했다. 21일 로이터통신은 매케인이 오바마를 5%포인트 차이로 앞섰다고 보도했다. 매케인의 선거광고에 대한 유권자 반응은 오바마에 비해 월등히 높다.

네거티브 선거전에 대한 유권자 인식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8일 라스무센리포트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66%는 네거티브 광고가 거슬리긴 하지만 언론 보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보다 선거광고를 통해 후보자 정보를 접하는 데 찬성했다. 두 후보가 박빙의 선거를 치르게 된다면 네거티브 광고전은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그 와중에 인종 문제가 최대 이슈로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미국 사회의 통합은 도전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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