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21>외국에 나가봐야 캐디 고마운 줄 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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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 26면

서울에서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지인 3명이 캘리포니아 골프스쿨(PGCC)에서 연수 중이던 필자를 위로(?)차 방문한 것이다. 때는 지난해 5월이었다. 오랜만에 일합을 겨루기 위해 필드로 나섰다.

“역시 미국 골프장이 좋군 그래. 반바지를 입어도 뭐라는 사람 없고, 빨리 치라고 재촉하지도 않고 말이야.”

“누가 아니래. 부킹도 쉬운 걸.”

서울에서 온 동료들은 오랜만에 해방감을 느낀 듯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던 4번 홀. 싱글 핸디캡 골퍼인 A가 갑자기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 피칭 웨지가 없어졌네.”

“그래? 도대체 어디다 빠뜨린 거야?”

클럽을 찾느라 수선을 피우는 사이 50대로 보이는 백인 남자가 카트를 타고 뒤편에서 달려왔다.

“이거, 당신 클럽 아닌가.”

“맞다. 오, 그런데 이 클럽을 당신이 어떻게….”

“3번 홀 그린 옆에 떨어져 있던데.”

백인 남자는 우리 일행의 바로 뒷조에서 플레이하다 클럽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클럽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일부러 카트를 타고 달려온 그에게 우리 일행은 “생큐”를 연발했다.

“이것 참, 캐디가 없으니깐 클럽을 챙겨 줄 사람이 없구먼. 각별히 신경 써야겠어.”

서울에서 온 동료들과의 라운드는 계속됐다. 그런데 9번 홀에서 다시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엔 B가 갑자기 “클럽이 없다”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조심하지 그랬어. 또 빠뜨린 거야?”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다시 뽀얗게 먼지가 피어 오르더니 4번 홀에서 만났던 사나이가 다시 카트를 몰고 나타났다.

“당신네 클럽 맞지? 이번엔 벙커 옆에 떨어져 있던걸.”

두 번씩이나 클럽을 찾아준 백인 남자에게 우리 일행은 할 말이 없었다. 다시 “생큐”를 연발할 수밖에.

“나 원 참, 이런 망신이 있나. 한국에선 캐디가 어련히 알아서 클럽을 챙겨줄 텐데…. 캐디가 없으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세.”

“그러게 말이야. 캐디가 없으니 별일이 다 있군 그래.”

우리 일행은 혀를 끌끌 차며 10번 홀로 향했다. 그런데 사건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16번 홀 그린 주변, 이번엔 C가 하얗게 질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번엔 내 아이언이 없어.”

“뭐라고? 뭐야, 클럽을 또 놓고 온 거야?”

우리 일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신령님(?)이 나타났다.

“클럽을 또 찾았다. 이런 식으로 줍다간 18번 홀 끝나면 아이언 한 세트 장만하겠는걸.”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18홀을 마치기도 전에 세 차례나 클럽을 흘리고 다녔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더 이상 클럽을 흘린 이는 없었다. 18홀을 마친 뒤 우리 일행은 세 차례나 클럽을 찾아준 그 백인 남자와 클럽 하우스에서 마주쳤다. 감사의 표시로 음료수를 주문해 그 남자 일행에게 돌렸다. 그러고는 우리끼리 넋두리를 했다.

“미국 골프장이라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군 그래.”

“그러게, 서울 돌아가면 캐디한테 잘해야 할 거 같아.”

4명의 클럽을 챙기고, 공을 찾아주고, 거리를 불러 주고, 브레이크를 읽어 주고, 때에 따라선 손님의 신경질까지 받아주는 사람. 대한민국 캐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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