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간 편지.엽서 스크랩 8권이 집의 가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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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 댁의 가보(家寶)가 뭐냐』고 물으면 많은 가정이 그저 망설이련만 주부 윤혜경(尹惠敬.63.경기도성남시분당구이매동)씨는 『이것』하면서 두툼한 스크랩북을 자신있게 내보인다.
「엄마 다음서부터는 아침에 심술부리지 않고 엄마 말씀 잘 듣겠어요」하고 갓 국민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72년에 보낸 생일축하카드부터 20여년동안 윤혜경.김상은(金相殷.63)씨 부부와 세 자녀가 주고받은 편지.카드.엽서가 스크랩북 여 덟 권 분량.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가족간의 변함없는 애정은 물론이고이 가정의 가족사가 고스란히 읽혀진다.「사랑하는 당신의 생일을축하합니다」「아빠!60부터 다시 새 인생이 시작된대요.아빤 이제 한 살!더 건강히,젊게 사세요.OK?」「장인 ,장모님께.결혼후 처음으로 두 분께 쓰는 글입니다…」.
글씨도 채 곁들이지 못하고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어머니.아버지를 엉성하게 그려낸 카드가 어느새 빼곡한 장문의 편지로 변해가는가 하면 낯선 필적이 가세,「새 식구」의 등장을 알리기도 한다. 미국 사는 큰딸 진희(眞喜.35)씨 내외를 비롯해 아들 지열(志烈.32)씨 내외는 충남 공주에,둘째딸 진경(眞卿.28)씨 내외는 영국에 각각 떨어져 살다보니 다들 장성한 요즘도 장문의 편지왕래가 잦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생일이나 어버이날이면 꼭꼭 편지나 카드를 쓰곤 했다』고 가보의 유래를 설명하는 어머니 尹씨는 편지 속에 평소 말로 다 못한 애정을 담다보니 그랬는지 『아이들이 남달리 정(情)많고 살 뜰한 성격으로 자랐다』고 말한다.
살뜰하다고는 해도 아들.사위의 편지는 아무래도 간결하고 무뚝뚝한 편으로 때늦은 어리광도 부려오는 딸들의 편지만한 재미는 없다.그중에서도 며느리 양정윤(梁禎允)씨가 결혼식날 신혼여행을떠나기 직전 어머니 손에 쥐어준 편지가 「가보중 의 가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서로를 알게되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크나큰 기쁨인데,하물며 한 가족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큰축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저를 새로운 자식으로 인정해주시고 아름다운 가족의 테두리 안에 동참할 수 있게 하여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감히 제가 두 분께 소망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면 그건 아버님어머님의 그저 평범한 며느리가 아닌 사랑스런 딸로 시작하여 지혜로운 자식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부족하고 철없다 생각되시는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미리 고백드리는 것이니 사랑으로 가르쳐주세요.」 액자에 넣어 안방에 늘 두고보는 며느리의 편지를 자랑스레 내보이며 尹씨는 『늦둥이로 얻은 딸』이라고 흐뭇해한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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