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베이징 대첩’ 뚝심과 믿음의 김경문, 호시노 두 번 울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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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22일 우커쑹 메인구장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준결승전에서 숙적 일본에 6-2로 역전승, 사상 처음으로 결승전에 진출했다. 한국은 준결승에서 미국을 10-2로 꺾은 쿠바와 23일 오후 7시(한국시간) 금메달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인다.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특히 관심을 모은 것은 양팀 감독의 자존심 대결이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 전부터 호시노 감독은 사사건건 ‘말 야구’로 한국팀의 신경을 건드렸다. “한국의 경계 대상은 선수가 아니라 위장 오더”라는 등 지난해 12월 올림픽 예선 때 나온 한국의 ‘이중 오더’를 물고 늘어졌다. 이럴 때마다 김 감독은 “일본이 야구 강자인데 그 정도의 아량과 마음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며 “입씨름하고 싶지 않다. 실력으로 겨루자”며 정정당당한 승부를 주문했다. 결국 김 감독은 말이 아니라 실력으로 호시노 감독을 예선리그와 준결승전까지 두 번이나 무릎 꿇게 만들었다.


한국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8연승으로 결승전에 진출한 것은 김경문 감독의 강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감독의 리더십을 한마디로 말하면 뚝심과 믿음이다. 고집불통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김 감독은 자신의 뜻을 좀체 굽히지 않는다. 준결승전 승리 후 “저는 승부를 걸어야 될 타임이라고 판단되면 무조건 합니다. 그리고 제가 책임지면 됩니다”라고 밝힌 데서도 그의 스타일을 알 수 있다.

김 감독은 그의 뚝심대로 이날 경기에서도 용단을 내렸다. 1-2로 뒤진 7회 말 1사 1루에서 이번 대회 가장 타격감이 좋은 이대호(롯데)를 빼고 대주자 정근우(SK)를 투입했다. 이 경기를 미국으로 중계방송 하던 해설자가 “미친 짓”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사 1, 2루에서 대타 이진영(SK)의 우전안타 때 발 빠른 정근우가 홈을 파고 들어 2-2 동점을 만들었다. 만약 이대호였다면 홈에서 아웃될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이런 과감한 작전의 배경에는 선수들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8회 말 결승 홈런을 터뜨린 이승엽(요미우리)을 끝까지 기용한 것도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감독은 “이승엽은 큰 경기에서 쳐주는 선수이니까 한 경기만 잘해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4번 타자로 기용했다. 마침 오늘이 그날이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지난달 이대호를 대표팀에 선발했을 때도 팬들의 비난이 많았다. 그러나 김 감독은 “아시아 예선전부터 함께 고생한 선수를 데려가겠다”며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 이대호는 이번 올림픽 예선리그에서 결정적일 때마다 3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김 감독은 베이징으로 떠나기 전 이런 말을 했다. “큰 경기에서는 선수 한 명이 미쳐야 한다”고.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선수가 아니라 김경문 감독에게 신이 들렸다.

베이징=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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