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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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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올해 노사관계의 최대 쟁점인 비정규직 문제는 더 이상 해결을 미룰 수 없는 사회적 난제다.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2003년 말 현재 32.6%(IMF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평균 근속연수는 5.6년으로 일본(11.3년), 유럽연합(9.8년), 미국(7.4년)보다 훨씬 짧다. 정규직의 절반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고 언제 그만둘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태의 비정규직 근로자는 계속 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노사관계의 악화, 빈곤층의 확산, 사회적 갈등의 심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단선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양면성을 포함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해야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반면 이를 위해 비정규직을 늘리면 근로자의 노동조건은 적정 수준 이하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노사는 상대방의 희생과 양보만을 요구하고, 정부는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IMF가 최근 한국에 권고한 스페인식 타협모델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스페인은 정규직의 퇴직금을 대폭 낮추고,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한 기업에 정부가 보조금이나 세제혜택을 주었다. 이를 통해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생긴 150만개의 일자리 가운데 76%를 정규직에서 창출했다.

우리의 노사정은 말로는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아무런 성의도 보이지 않고 있다. 노동계가 올해 정규직의 임금인상률을 10%대로 제시하면서 비정규직의 임금을 정규직의 85% 수준으로 올리라고 하는데 이런 임금 수준을 견딜 기업이 있겠는가. 기업에도 문제가 있다. 단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이기적 행태는 시정돼야 한다. 이 문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지금 기업의 어려운 형편을 감안할 때 비정규직 비율의 축소는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이를 위한 세제지원 등 정부의 지원도 긴요하다. 노사정 3자는 어느 선이 가장 적정한가를 지금부터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