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자녀 수학왕 만드는 비법 "공식 암기보다 예제 먼저 풀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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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한 번 받은 적 없이 고교 수준의 수학 실력을 지닌 초등학생들이 있다. 주인공은 권혁재군(대전 내동초 6·左)과 오정명양(서울 방현초 5·右). 한 학습지 회사가 주최한 수학능력테스트에서 고교 수준 능력을 인정받아 대학 2년치 장학금을 받았다. 권군은 고교 이과 수준, 오양은 고교 문과 수준의 수학 실력을 자랑한다. 권군과 오양의 부모는 “어려서부터 공부습관을 잘 다졌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생활 속 궁금증 유발로 탐구학습”=“베이징 올림픽 개막시간을 루트로 계산해 볼게.” 권군이 종종 엄마 박래숙(43)씨 앞에서 자랑하듯 말하는 수학 학습법이다.

박씨는 아들에게 어릴 때부터 생활에서 숫자를 찾는 재미를 가르쳤다. 엘리베이터 층별 숫자를 손가락으로 꼽아보기부터 아파트의 동·호수의 구성 방법 알아보기, 환율 변동에 따른 과자 값의 변화 추정까지. 박씨는 “처음엔 숫자 ‘영(0)’과 알파벳 ‘오(O)’도 혼동해 수와 알파벳의 구성을 차근차근 반복 설명해 줬다”고 말했다. 그 후론 수학 공부를 할 땐 ‘영’으로, 영어 만화를 볼 땐 ‘오’로 스스로 적용하더란다.

박씨는 수의 계산보다 이해에 중점을 뒀다. 예를 들면 ‘피타고라스의 정리’ 이론과 뒷이야기를 들려준 뒤 만일 권군이 이를 발견하면 자신의 이름을 딴 ‘혁재의 정리’가 탄생된다는 식이다.

박씨는 정답을 바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권군이 물어보면 “글쎄~?”라고 답변했다. 답을 몰라도 모른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이어 권군이 의문을 해결할 때까지 함께 자료를 찾았다.

왕성한 호기심은 권군이 수학문제를 거꾸로 풀게 만들었다. 정답을 먼저 본 후 답이 나오려면 어떤 풀이과정이 적용됐는지 추정해간 것. 박씨는 그런 행동을 꾸짖기보다 문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옆에서 함께 고민했다.

박씨는 “공부 분량을 정해주고 실천하면 칭찬을 과할 정도로 많이 했다”며 “원리 설명 위주의 수학 잡지를 속독과 정독을 반복한 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엄마와 대화하며 풀이과정 이해”=오양과 엄마 송미란(38)씨는 수학을 대화하면서 공부한다. 엄마가 문제 풀이과정을 영화 줄거리처럼 설명해주면 오양이 요약해 말하는 식이다. 엄마는 딸이 잘 이해했는지 점검하고 피드백을 준다. 엄마의 꼼꼼한 학습 체크가 유치원과 학원 한 곳 다니지 않은 오양을 ‘수학왕’으로 키운 것이다.

오양은 수학 문제마다 ○(정답)·△(힌트로 해결)·□(한번 틀림)·☆(모름)를 표시하고, 틀린 문제를 따로 모아 문제 유형과 풀이과정을 자신이 쓴 답과 비교했다. 송씨는 “새 단원을 공부할 땐 이론 설명이나 공식 암기보다 예제문제를 먼저 풀었다”며 “전 단원에서 배운 해결법과 연결되는 원리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송씨는 부모와 자녀의 상호교감이 공부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강조했다. 그는 “쉬운 문제라도 아이가 해내면 많이 칭찬하고 어떻게 풀었는지 자랑하게 해 발표력도 함께 길러줬다”며 “이를 통해 아이의 이해 여부를 확인하고 같은 문제라도 유형을 달리하면서 문제 수준을 조금씩 높여갔다”고 말했다.

오양은 수학경시대회에 여러 차례 출전하면서 실력을 키웠다. 대회 준비를 통해 목표의식을 기르고 수상을 통해 학습동기로 삼았다. 매주 학습 진도를 정해 실천하는 습관도 길렀다. 공부하지 못 한 부분은 다음날이나 휴일에 시간을 내 완수했다. 학습단계는 아는 부분도 건너뛰지 않고 차곡차곡 다 밟았다. 한자 자격증도 8급부터 시작해 모든 급수를 딴 후 1급을 땄을 정도다.

송씨는 “수학 공부에 필요한 인내심을 길러주기 위해 온 가족이 자주 등산을 했다”며 “오랜 시간 동안 힘들게 걸어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쁨을 수학 공부 때마다 떠올리게 해 용기를 북돋웠다”고 말했다.

글=박정식 기자, 사진=이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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