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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 강령 집중분석] 黨간부 "아직은 과정…우리도 잘 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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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22일 국회의원 등록실에서 등록을 마친 민주노동당 단병호(右).심상정 비례대표 당선자가 국회에서 제공한 의원가방을 살펴보고 있다. [오종택 기자]

17대 총선을 통해 제3의 정치세력으로 급부상한 민주노동당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 경제계에서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노동계와 진보적 재야세력은 사회변혁의 기대감이 크다. 그러나 누구도 정확히 민노당의 실체와 지향점을 잘 모른다. 민노당의 간부들조차 민노당의 정책들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민노당의 정책 방향을 강령과 총선공약 등을 통해 집중조명한다.

'우리는 노동자와 민중 중심의 민주적 경제체제를 지향한다. 사회적 소유를 바탕으로 시장을 활용하여, 경제의 효율과 안정을 추구함과 동시에 평등한 분배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민주노동당 '경제분야 강령'중에서).

민노당의 경제강령은 많은 주장을 담고 있으나 여전히 개념이 확실치 않다.

김석현 민노당 정책위 부위원장은 "민노당이 그리는 경제체제가 무엇인지 현재는 누구도 알 수 없다"며 "지금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3대 경제강령=민노당 경제강령은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모호하거나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되는 것이 많다. 그동안 재야 운동권이나 노동계에서 주장해 온 재벌해체나 노동자 참여 등을 열거하고 있으나 막상 어떻게 이를 현실에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어떤 대목에선 인식의 혼란과 개념의 상충마저 엿보인다.

'재벌을 해체하고 민주적 참여기업을 확산한다'는 첫번째 강령은 이번 총선에서 '노동자 경영참여 확대'와 '기업 출연에 의한 노동자 소유기금 설치'등의 공약으로 나타났다.

법적으로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라고 인정하지만 사회적 실체로서 기업은 종업원.채권자.경영자.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의 복합체라는 민노당의 기업관이 반영된 것이다. 민노당의 강령 실현 방안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총수 일가의 지분을 공적자금을 활용해 강제로 유상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당장 사유재산제를 근간으로 하는 시장경제 체제와 정면으로 배치될 소지가 크다.

민노당 관계자는 강제로 빼앗겠다는 게 아니라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늘려 결과적으로 재벌의 영향력을 줄이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은 강령의 주장과 달라 혼란스럽다.

노동자.농민을 중심으로 정부대표.기업 경영자 대표가 참여해 경제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시장을 감시.통제하는 '경제정책조정위원회'를 창설하자는 구상도 애매하다. 민노당 정책 관계자는 재경부 경제정책국의 위상과 기능을 확대한 것쯤으로 해석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더 이상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다. 노동자.농민이라는 특정한 계층이 경제계획에 어떻게 참여하겠다는 것인지, 이들의 분배 몫을 늘리는 것이 과연 형평의 원칙에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성장 없이 분배에 치중할 경우 조직화한 이익집단만 더 많은 몫을 가져가는 결과를 빚는다"고 지적했다.

민노당이 보는 세계경제는 '불평등한 무역구조로 인해 이익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이전되는 구조'다.

이 같은 인식 아래 민노당은 대외무역과 자본이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세계무역기구(WTO) 및 다자간 투자협정 등 각종 국제협약을 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고립주의적 태도가 불러올 국민경제의 후퇴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실현 가능성은=민노당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아직 정강정책을 실현할 구체적인 밑그림이 없다는 점이다.

이념적 목표만 있을 뿐 이를 뒷받침할 예산확보 방안이나 우선순위 조정, 경제적 파장에 대한 분석이 없다. 이 때문에 자칫 현실과 동떨어진 '구호'로만 머물 가능성이 있다.

총선 때 밝힌 '부유세 도입'공약이 대표적인 예다. 부유세란 부동산.증권 등 유형자산과 특허권과 같은 무형자산을 포함해 일정한 규모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 누진과세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정세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원장은 "무형의 자산가치를 평가하기가 쉽지 않고 조세저항과 징세비용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는 "민노당이 그동안 제도권 안에서 책임 있게 현안을 다룬 적이 없기 때문에 정책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노당 송태경 국장은 "민노당도 대안을 내놓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며 "앞으로 선언적 대응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부 정책팀
사진=오종택 기자<jongta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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