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북한의 생존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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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4월 16일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클린턴 미국대통령이4자회담을 제의한 이후 북한은 아직까지 분명한 태도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북한은 4자회담에 동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은 확보하면서도 동시에 한반도의 평화문제 를 한국정부와는 협의하지 않겠다는 종래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묘안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아무리 기발한 전술적 대응을 한다고 해도 해결될 수 없는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해 있다.북한은 보다 근본적인차원에서 생존전략을 찾아야 한다.북한 통치자들이 체제의 위기를정면으로 인정하기를 계속 거부하면서 협상전술의 차원에만 집착한다면 북한은 암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은 계속 거부하면서 우선 통증만을 없애는 약을 복용하는 환자와도 같은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핵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미국을 북한과의 쌍무협상에 끌어들이는데 성공했고 대미(對美)협상에서 「벼랑끝」대결을 통해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북한의 위상(位相)제고라는 정치적 이익까지 얻어냈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그러나 만일 처음 부터 핵문제가 없고 북한이 한국과의 관계개선 용의가 있었다면 북한은 보다순조롭게 대미관계를 개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북한은 전술적 문제에 집착할뿐 전략적 선택을 거부하고있다.물론 북한 통치자들의 판단으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이야말로북한이 위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관건이 된다고 믿고 있는 것같다.북한은 지금 중국도,러시아도,일본도 안 중에 없다.오직 미국만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같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에 접근하는 태도를 보면 근본적인 문제는 무시하고 현실성 없는 요구와 기대만을 가지고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가령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은 미국에 상당한 분량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그러나 북한이 미국의 정부조직및 예산구조 등을 알고 있다면 그런 현실성 없는 요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더욱 중요한 점은 미국이 어느 정도의식량지원을 한다고 해도 북한의 식량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북한통치자들은 북한 경제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객관적으로 인식하는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북한 경제는 구(舊)공산권의 붕괴로 인한 대외환경의 극적인 변화와「주체」를 추구해온 경제체제의 비능률과 경직성이 위기의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따라서 북한의 생존전략은 새로운 국제환경에 적응하고 비능률과 경직성을 극복하기 위한 개방 과 체제개혁을 과감하게 시행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이러한 근본적인 구조전환을 추진한다면 협상전술을 통한 한계이익의 추구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
이제라도 북한이 구조전환을 통한 생존전략을 선택한다면 북한통치자들은 두가지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첫째는「개방과 개혁」을 위해 창문을 열게 되면「파리와 모기」가 들어오는 문제다.특히 외부의 파리와 모기에 면역돼 있지 않은 북한 사람들에게는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할 수 있다.그러나 북한 통치자들은 창문을 열지 않는 경우 신선한 바 람이 들어오지 않으므로 북한의 체제 자체가 결국은 질식되고 만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개방과 질식 이외의 다른 제3의 대안은 없다.그리고 생존을 위해서는 창문을 열지 않으면 안된다.
다음 문제는 대한민국 정부를 인정하는 문제다.북한은 일관되게한국정부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한국이 제외된 국제환경을 조성해 보려고 온갖 전술을 다 시도해 왔다.그러나 한국이란 존재는 북한통치자들의 주관적 인식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문제는 한국의 존재가 부정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대남(對南)태도가 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통치자들에게 하나의 질문이 있다.만일북한이 한국정부의 존재를 인정하면 북한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게될 것인가 하는 매우 기초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사실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북한이 한국정부를 인정했을 때 무슨 큰 문제가 있을까.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외교적 고립에서 탈출할 수 있는 돌파구가 생기고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 경제의 구조전환을 도와줄 수 있는 파트너를 얻게 된다.이것이 바로 북한의 유일한 생존전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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