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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통미봉남’ 자초하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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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 35면

남북 관계가 계속 꼬이고 있다. 과거에는 남북 관계가 꼬일 때마다 8·15 경축사에 대북 메시지를 담아 반전의 계기를 만들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대했던 반전의 메시지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전면적인 대화와 경제협력”을 강조하면서도 이를 “6자회담과 국제협력의 진전”에 조건부로 연동시키고 있고, “남과 북 모두가 함께 잘사는 꿈”을 역설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 대안의 제시는 없다. 지난 7월 11일 국회 개원연설보다 후퇴한 느낌이다. 남북관계 경색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경색 국면을 풀 것인가? 무엇보다 신뢰를 쌓아야 한다. 소모적인 기 싸움만으로는 불신과 반목의 증폭을 가져올 뿐이다. 신뢰는 상대방의 정체성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북의 입장에서 이는 김정일 위원장이 서명한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을 인정, 계승하는 것을 의미한다. MB 정부가 이 두 선언의 정통성을 명시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한, 북 또한 남을 인정하기 어렵고 신뢰 구축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신뢰를 쌓으려면 북에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보내서는 안 된다. MB 정부는 취임 이후 남북기본합의서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기본합의서 1조와 2조는 남북 간 체제 이질성을 인정하고 상호 내정 간섭을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북의 입장에서 우리 정부의 인권문제 제기는 내정 간섭이자 기본합의서의 위배인 것이다. 상생과 공영을 표방하면서도 북에 인권 압박을 가하는 것은 다분히 모순적 행위로 비춰지기 쉽다. 신뢰 구축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북관계의 국제적 쟁점화도 문제시된다. 금강산 피격 사건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라는 다자무대와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양자무대에서 외교적 쟁점으로 공론화할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북한 인권문제만 해도 그렇다. 유엔 인권위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공개적 문제 제기가 가능할 터인데 왜 한·미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설정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외교 행보는 북한과의 소모적인 외교 경합을 야기할 뿐 아니라, ‘외세와의 야합’을 통한 대북 압살 정책이라는 북측의 비난에 빌미를 제공, 남북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이렇게 보면 ‘통미통남’ 하려는 북을 우리 스스로가 ‘통미봉남’으로 유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MB 정부의 외교기조는 창조적 실용외교다. 실용외교는 가치와 이념을 지양하고 우리가 처한 국제 현실의 냉철한 진단을 통해 현안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외교노선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는 ‘실용’이 없어 보인다.

‘그냥 두면 못 견디어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북한이 변하지 않는 한 대북지원과 협상은 없다’는 경직된 발상, ‘북이 수용하지 못할 것을 요구하며 자기만족에 빠지는’ 나르시시즘적 행태, ‘인권의 보편성만 강조하지 평화와 신뢰 구축이란 한반도의 특수성을 간과’하는 편파적 인식, 그리고 비공식 대북채널을 거부하고 당국자 회동에만 집착하는 단선적 행보는 실용주의가 아니다. 이는 오히려 교조적 일방주의라 하겠다. 부시 행정부 1기의 망령이 우리에게 되살아나는 것 아닌가 하는 기우가 앞선다.

모든 외교 관계가 그러하듯이 남북관계도 상대가 있다. 역지사지의 신중함 없이 우리 입장만 일방적으로 내세우면 남북 긴장국면이 장기화·구조화될 수 있다. 자칫 군사적 마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MB 정부의 핵심 과제인 ‘경제 살리기’뿐만 아니라, ‘글로벌 코리아’라는 국가 브랜드 이미지에도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 ‘현대아산 파산, 개성공단 폐쇄, 중소기업체들의 줄 이은 도산’을 가정해 보자. 국제신인도는 물론 외국인 투자 유치 환경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지적했듯이 대북 정책은 “특정 정권 차원이 아니라 민족장래의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옳은 말이다. 대북 정책은 특정 정권,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이제 대승적 차원에서 남북관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가져 올 수 있는 대담하고도 실용적인 대북정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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