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메달과 국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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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 32면

인류의 축제인 올림픽이 갈수록 국가 간 메달 전쟁 양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총 928개 메달을 놓고 200여 국가가 열띤 경쟁을 벌여왔지만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지금까지 동메달 하나도 목에 걸어 보지 못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의 경우 상위 30개 국가가 전체 메달의 83%(776개), 상위 10개국이 56%를 가져갔다. 상위 30개국의 그해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공교롭게도 84%였다. 체력은 국력이란 말이 실감난다.

그렇다면 메달 획득과 국력 간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대니얼 존슨 교수는 GDP와 인구·정치체제·기후·개최국의 홈 어드밴티지 등 다섯 가지로 예측모델을 만들어 2000년 이후 각국의 메달 획득 전망을 95∼96% 정확히 맞혔다.
또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3년째 메달 획득의 결정요인에 관한 분석과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 PWC 모델은 인구, 평균 소득수준, 홈 어드밴티지와 함께 국가적 스포츠 계획(state planning)과 과거 실적을 중시하는 점이 좀 다르다.

우선 인구와 경제적 부(富)는 메달 획득과 반드시 정비례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비례관계가 성립한다. 아프리카 빈국이나 작은 섬나라의 다윗들이 강대국 골리앗들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 기적 같은 일도 없지는 않다. 인구 대국인 인도의 메달 획득은 시드니와 아테네 올림픽에서 각각 1개씩이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예상 메달 수도 6개에 불과하다. 하키를 제외하고 크리켓 등 인도의 인기 스포츠 대부분이 올림픽 종목이 아니라는 설명도 따른다. 브라질·폴란드·멕시코·인도네시아 등 성장 잠재력이 큰 국가들의 메달 증가세가 두드러지는 한편 성장세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성취 욕구가 다변화하면서 메달에 대한 성취 욕구가 줄어드는 현상도 나타난다.

홈 어드밴티지는 수치로 따지기 어렵다. 호주는 시드니 올림픽에서 메달 58개를 땄지만 4년 후 아테네에선 49개로 줄었다. 그리스는 시드니에서 13개였지만 아테네에서 16개로 늘었다. 비율로 20% 가까운 증감은 무시할 수 없는 차이라는 주장이다. PWC는 중국이 이번에 홈 어드밴티지를 업고 미국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측해 결과가 주목된다.

현실적으로 메달 획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국가적 스포츠 계획이다. 소련과 동구권 공산국가, 그리고 쿠바와 중국 등은 GDP 수준이 낮으면서도 전통적인 메달 강국이었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불가리아·루마니아·체코 등은 과거의 국가적 스포츠 자산 덕분에 앞으로 상당 기간 선전이 예상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스포츠 강국 동독의 유산이다. 동독은 역대 올림픽에서 톱5였고 몬트리올·모스크바·서울 올림픽에서는 2위였다.

그러나 통일 후 동독의 국가 스포츠 체제는 해체됐고 통일독일 팀은 92년과 96년에 3위를 했으나 2000년에는 5위, 2004년에는 6위로 내리막길이다. 종목별로 이상적 체형을 가진 어린이를 선발해 스포츠 기숙사학교에 집어넣고 감옥 같은 환경 속에서 스파르타식 강훈련으로 메달을 노리는 국가 스포츠 체제는 이제 공산체제의 유물이다. 그러나 메달 경쟁을 의식해 독일과 호주·일본 등은 중앙집권적 스포츠 프로그램을 속속 도입하는 중이다.

독일 정부는 엘리트 스포츠 스쿨의 국가 네트워크 재건을 위해 2억 달러를 배정하고, 3분의 2를 수영·육상 등 국가훈련센터 건설에 투입하기로 했다. 일본의 아테네 금메달 16개 중 절반은 유도였으며 국가훈련센터의 산물이었다.

단거리 육상(카리브해 국가)이나 장거리 달리기(케냐·에티오피아) 등 비교우위 종목 특화로 산업 클러스터 같은 스포츠 클러스터를 형성해 세계 제패를 노리는 스포츠 다윗들의 경쟁력도 만만치 않다. 한국의 양궁과 태권도가 그렇다.

잣대를 바꾸어 인구 100만 명당 획득 메달 수로 따지면 바하마·호주·쿠바가 1, 2, 3위다. 메달 1개 따는 데 투입된 GDP로 그 효율성을 따지면 에티오피아·그루지야·벨로루시·불가리아·우크라이나 순서다. 일본은 GDP 4조6000억 달러에 메달 37개로 맨 꼴찌, 미국은 11조7000억 달러에 103개로 꼴찌 다음, 캐나다·영국·프랑스 등이 그 뒤를 잇는다. 국가 메달 순위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부질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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