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마음껏 발산할 기회의 땅 원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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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 20면

앨런 메서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나의 가치를 높여준다.”
미국 실리콘 밸리는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의 메카다. 세계 곳곳의 IT 기술자들이 꿈을 찾아 이 땅에 모여든다. 삼성전자가 1992년 미주 R&D센터를 세운 이유도 인재 확보를 위해서였다. 중앙SUNDAY는 이곳에서 일하는 외국인 공학박사 두 명을 인터뷰했다. 영국계인 앨런 메서와 중국계인 추 융 은고다. 먼저 그들에게 무엇에 끌려 실리콘 밸리에 왔느냐고 물었다.

삼성전자 실리콘 밸리 R&D센터의 컴퓨터 공학자들

“IT 박사급 보수는 실리콘 밸리나 다른 곳이나 큰 차이가 없다. 내 아이디어를 실험해볼 수 있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이곳에 왔다. 성공 모델이 넘치고 벤처 투자자와 변호사 등 간접적인 지원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어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도전을 중시하되 실패에 관대한 문화도 매력적이다. 일단 실패해도 눈높이만 낮추면 얼마든지 재기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메서)

추 융 은고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동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 실리콘밸리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우선 생활 인프라에 끌렸다. 날씨가 좋고 아이들을 위한 환경도 잘 조성돼 있다. 게다가 수많은 IT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저기서 일해 볼 기회가 열려 있다. 나 같은 컴퓨터 공학도에게 여러모로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 실리콘 밸리다.”(추)

두 사람은 “이곳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나의 브랜드와 가치를 높여준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두 사람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이곳저곳에서 일하다 결국 실리콘 밸리에 둥지를 틀었다. 메서는 미국 휼렛패커드와 일본 소니·NTT도코모 등을 거쳤다. 추는 유럽계 필립스에서 일했다.

한국에 실리콘 밸리 같은 곳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 봤다.
“현재 여건이 실리콘 밸리보다 더 좋을 뿐만 아니라 미래 전망도 더 밝다는 점을 기술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인재들은 연봉을 좀 더 준다고 해서 쉽게 옮기지 않는다. 나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가 계속 열릴지를 항상 따진다.”(메서)
“실리콘 밸리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단순 복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하나의 시스템이 되기 위해서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추)

그러면 이들이 삼성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소회는 어떨까. 삼성의 조직문화에 대한 불만은 없는지 물었다.
이들은 의사결정 구조의 차이를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 회사들은 수평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반면 한국 기업은 위계서열 구조가 뚜렷하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미국과 유럽 기업은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의논해야 하는 부서가 많다. 한 가지를 결정하기 위해 여러 번 회의를 해야 한다. 그만큼 결정이 느리다.”(메서)

삼성의 빠른 의사결정은 분명 장점이라는 의견이었다. “바로 위 책임자만 동의하면 곧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옆을 돌아볼 필요가 없다. 삼성의 속도 경영은 세계적 수준이다.”(추)

하지만 자칫 소통이 소홀해질 수 있는 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벽이 없는 의사소통 또한 빠른 결정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지속 성장하기 위한 핵심 요소는 다양한 구성원 간의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많아도 소통이 되지 않으면 경쟁력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로 이어지지 않는다. 애플의 아이폰도 작은 아이디어에 여러 부문 사람들이 또 다른 아이디어를 덧붙여 탄생했다.”(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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