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문학실험>6.형태파괴시 김종해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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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65년 발표된 나의 데뷔작이자 신춘문예 당선작품인 『내란』을읽어본 당시의 독자들은 다소 어리둥절하고 의아했을 것이다.왜냐하면 그 작품은 새해벽두에 신문에 발표되는 신춘문예 당선시로서의 규격을 여지없이 깨뜨렸기 때문이다.
형태상으로 볼 때 글자와 글자 사이의 띄어쓰기가 철저하게 무시되고,문장을 꺾는 행 구분도 의도적으로 흐트러뜨려 놓음으로써웬만한 끈기를 갖지 않고선 이 작품을 읽을 수 없도록 맞춤법을무시해 놓았던 것이다.
그러한 시적 장치는 작품읽기를 방해하기 위한,다분히 의도적인것이었다.
나는 이 작품이 당선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으며,단지 당선 예상작품과 함께 딸려 보낸 보조작품쯤으로 생각했다.그러나 당시의 선자였던 박목월(朴木月),조지훈(趙芝薰)두 분은 뜻밖에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고 『내면의 혼란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했다.끈적끈적한 점액성의 접착제가 글자와 글자,행과 행사이에 붙어 있는 이러한 언어 형태의 파괴는,데뷔작뿐만 아니라80년대초에 끝난 연작시 『항해일지』에 이르기까지 내 시의 기법에 틈틈이 등장한다.
말과 말,언어와 언어가 단락지어지지 않고 잇닿아 흐름으로써 드러나는 시적 효과는,내면의식의 아픔과 고뇌 혹은 의식현상의 한 흐름을 포착하는데 적절히 구사된다.이럴 때 극히 경계해야 할 점이 난해시로의 전락이다.
나는 난해시를 싫어한다.시의 이미지와 의미,의도성이 투명하지못하거나,시인이 읽어서 이해되지 않는 시는 난해시라 할 수 있다.시는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이기를 거부한다.
80,90년대에 이르러 젊은 시인들에 의해 시도되었던 해체시.실험시.전위시의 경우 시적 성과가 높았던 황지우.박남철 등 몇몇 시인들을 제외하면 거의가 비시적이고 반시적인 난해시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시를 통해▶상대방(독자)에게 시인의 메시지가 전달돼야 하고▶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며▶시 읽는 재미와 즐거움이 있어야한다는 대전제 없이 시인이 시를 쓰는 행위는 무의미하다.시인의부단한 언어 탁마에 의한 실험성과 전위성에 의 한 시쓰기의 노력없이는 시의 새로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나의 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러한 형태상의 실험적 요소와 마찬가지로 서정성을 나는 또한 중시한다.언어에 의한 메마른구조물 사이사이에 정서적인 감정을 장치해 넣는데,이것이 서정성(물기)이다.이것은 내 시가 갖고 있는 목소리와 같은 것이며 컬러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대개 시인의 의도적 목적성이 이곳에장치된다.
시는 언어예술에서 출발한다는 기본적 명제 속에서,시의 수구성(守舊性)을 거부하고 시의 새로움을 구현하는 시인들의 끊임없는실험성은 앞날의 우리 시사에 의미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나는 믿는다.

<작가정보>김종해(金鍾海.55)시인은 63년『자유문학』에 시 「저녁」으로 신인상에 당선돼 문단에 첫발을 딛고 다시 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내란」이 당선됐다.시집으로는 『인간의악기』『신의 열쇠』『왜 아니 오시나요』『천노 일어서다』『 항해일지』등을 펴냈다.
60년대 중반 이후「현대시동인」으로 활동하며 서정에 실험성을가미한 현대적 서정을 일궜다.기존 서정시의 운율을 파괴한 붙여쓰기.띄어쓰기.연 나눔 등의 형태적 실험으로 시에서 긴장을 야기했으나 서정의 본질은 지켜낸 시인이다.83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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