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테러와의 전쟁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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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국이 알카에다를 상대로 벌여온 ‘테러와의 전쟁’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의 중도 성향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내린 결론이다. 미국은 군을 동원해 단번에 알카에다를 제거하려 했지만, 군은 테러조직을 상대하는 데 결코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랜드연구소는 ‘테러조직은 어떻게 소멸되나: 알카에다에 맞서기 위한 교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미국이 국제 테러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 작전에 나섰지만, 그 후 알카에다의 공격은 오히려 더 활기를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전에 비해 횟수도 늘고, 대상 지역도 유럽·아시아·중동·아프리카 등으로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또 “미국이 보다 효과적인 대응 전략을 짜기 위해선 과거 다른 테러조직들이 어떻게 소멸됐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소가 1968~2006년 등장했다 사라진 268개 테러조직의 소멸 과정을 연구한 결과, 군사력을 동원해 효과를 본 경우는 고작 7%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정치적 협상(43%)이나 경찰 혹은 정보기관에 의한 지도자 체포·사살(40%)로 없어졌다.

테러조직을 상대하는 데 경찰이 군보다 더 효과적인 이유에 대해 보고서는 “(잠시 주둔했다 철수하는 군대와 달리) 한 지역에 계속 머물며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치고 빠지기’식 전술을 구사하는 테러조직을 상대하기에 군대는 너무 무디고, 단지 중무장한 대형 테러조직의 폭동을 진압할 때만 유용하다고 결론 내렸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표현도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테러리스트는 범죄자로 묘사돼야 마땅한데, 전쟁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들이 이슬람 사회에서 ‘성전에 참가한 전사’ 대접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과 호주 등 대부분의 미국 동맹국은 이미 ‘테러와의 전쟁’이란 표현의 사용을 중단했다.

보고서는 결론적으로 미국에 이중 전략을 채택하라고 제안했다. 경찰력과 정보기관을 이용해 유럽과 북미·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 테러 지도자를 검거하는 데 주력하고, 폭동이 발생했을 때만 군대를 개입시키라는 것이 요지다. 연구를 주도한 세스 존스 연구원은 “미국이 알카에다를 이기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하다”며 “하나는 전략 변화고, 다른 하나는 테러조직은 결코 하루아침에 뿌리 뽑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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