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살아있다>예술혼 피울 터전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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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미술관과 화랑은 날로 늘어만 가고 있다.그림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미술문화는 부재인 듯하다.화가와 전시는 쏟아져 나오고 기획전시들이 연이어 벌어지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매양 비슷한 테마들 이고 그 작가가 그 작가다.큐레이터의 예술에 대한 독창적 사유에서 나온 전시라기 보다 유행이나 패션,외국에서 열리는 기획전시의 모방인것이 많다.특별히 외국작가들의 전시와 세미나는 큰 돈을 들여 치러내며 「세계화」를 실천하는 양상이 다.
이런 현실에서도 용케 죽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좋은 작품을 제작하며 분투하는 훌륭한 작가들이 어딘가에는 있게 마련이다.지난 여름 뉴욕의 한 화랑에서 열린 백남준 전시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한 구석에 놓여있던 거뭇거뭇한 라이프 마 스크는 매우상징적이었다.
당뇨로 거동이 불편해 보이던 백씨가 냉혹할 정도의 치열한 경쟁과 날카로운 눈들이 살아있는,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술문화가 새롭게 살아나는 뉴욕 소호에서 한 예술가와 화가로서의 삶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사실 예술 가의 운명은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찔러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형국이다.
금기를 깨고 그것을 넘어서는 비판적 상상력으로 삶의 모서리에서 버티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우리 주위엔 오직 자신만의 예술혼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분투하는 작가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상업주의가 넘치는 오늘의 빈곤한 미술계에 한줄기 광명이며 언젠가 우리 미술문화를 꽃피울 씨앗으로 생명력을 이어가고있다.그들이 예술혼을 꽃피울 터전을 마련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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