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두려운 ‘한증막 쪽방’ 독거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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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숙(가명·77) 할머니가 찜통더위 속에 어두운 2평짜리 방에 앉아 있다. 창문이 없어 어둡고 환기마저 되지 않는데 전기요금 때문에 선풍기도 계속 틀지 못한다. [사진=강정현 기자]

말복인 8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2평 남짓한 김선숙(가명·77) 할머니의 방은 낮인데도 깜깜했다. 창문이 없는 데다 더울까 봐 할머니가 전등을 꺼 놨기 때문이다. 온도계로 재 보니 방 안 온도는 바깥보다 2.5도가 높은 35.5도. 김 할머니의 방에는 선풍기 한 대가 돌고 있었지만 가열된 모터의 더운 바람만 뿜어 나왔다. 방 안 한쪽의 냉장고에서도 열기가 느껴졌다.

방바닥에 누워 TV를 보던 김 할머니가 선풍기를 껐다. 할머니는 “한 달에 전기료가 3만원 이상 나와 선풍기를 하루 종일 틀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한 달 수입은 정부에서 주는 노령연금 38만원과 구청에서 지원하는 10만원이 전부다.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는 자녀들의 형편이 좋지 않아 쪽방촌에서 혼자 살고 있다.

“좀도둑이 있어서 밤에도 문을 열지 못하고 자느라 죽을 지경이야.” 방 안 더위를 견디다 못한 김 할머니가 벽을 짚고 일어섰다. 할머니가 더위를 피할 곳은 집 앞 그늘이 전부다. 김 할머니 방을 지나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는 골목을 지나자 세 명이 모여 사는 쪽방이 나왔다. 이모(76) 할머니는 “더위가 심하면 어지럽고 토할 것 같다”며 “날이 더울 때는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옆에 있던 정모(76) 할머니는 “슬레이트 지붕이라 밤에 잠을 못 잘 지경”이라며 “방에 있다가는 더워 죽을 것 같아 교회 식당 등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고 전했다.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되면서 독거 노인들이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달 전남 광양과 전북 김제 등에서는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논밭에서 일하던 70~80대 노인들이 더위로 숨지는 등 최근 폭염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국내의 65세 이상 노인은 502만 명. 그중 김 할머니처럼 혼자 지내는 노인은 93만 명으로 전체의 18.6%를 차지한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독거노인 중 여름철에 냉방기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전체 독거노인의 17.3%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에서만 최고 온도가 33.4도 이상 올라간 날이 26일이나 됐던 94년에는 더위로 1074명이 숨졌는데, 65세 이상 노인이 713명으로 65%를 차지하기도 했다. 영등포 쪽방촌에서만 65세 이상 독거노인 137명이 폭염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서울대 의대 조비룡(가정의학과) 교수는 “장기 기능이 약화된 70대 이상의 노인은 29도만 넘어가도 몸에 부담이 온다”며 “영양소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는 독거노인의 경우는 심폐 기능이 떨어져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폭염 문제의 권위자인 미국 마이애미대 로렌스 칼크스타인(지리학과) 교수는 지난달 말 한국을 찾아 “폭염은 소리 없는 살인자(silent killer)”라며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다.

정부가 폭염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경제력이 취약한 독거노인 등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복지부는 지난달 11일 폭염에 취약한 노인 보호대책을 발표하면서 동사무소와 은행·교회 등을 무더위 쉼터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폭염대비 행동요령’ 리플릿을 배포하고 ▶낮 12시에서 4시 사이에는 외출을 삼가고 ▶물을 자주 많이 마실 것 등을 권고했다.

하지만 영등포 쪽방촌에서 만난 김모(61)씨는 “눈치 보며 은행에서 쉬느니 덥더라도 집 앞 그늘에서 쉬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쪽방촌 인근 교회에도 에어컨 시설이 있지만 가동하는 날은 한 달에 손으로 꼽을 정도라고 한다. 이 교회 남수진 복지사는 “정부가 예산 지원도 하지 않고 실행하는 정책이 효과가 있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유럽과 미국은 실효성 있는 폭염 대책을 시행 중이다. 2003년 전례 없는 폭염으로 1만5000여 명의 희생자를 냈던 프랑스는 전국 양로원에 최소 한 개 이상의 냉방시설을 의무화했다. 최고·최저 기온을 예측해 4단계의 특보도 발령한다. 미국은 95년 시카고 폭염을 계기로 폭염 경고가 내려지면 공중보건의들이 취약 계층 가정을 방문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글=강기헌 기자·이경진 인턴기자(성균관대 법학4년)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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