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 본 4·15] 3. 여론조사 공표 금지로 추측만 난무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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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서 여론조사는 무소불위.일희일비의 주역이었다. 가공할 위력으로 선거판을 휘저었다.

탄핵 이후 열린우리당이 200석을 넘길 것이란 소문이 퍼졌다. 여론조사가 정치권에 태풍 경보를 내린 격이었다. 선거 막판 한나라당이 무섭게 따라붙자 열린우리당에선 "여론조사 착시 현상으로 선거 본질이 왜곡되고 있다"고 했다. 선거 한달 전 지지율 때문에 '거여 견제론'이 먹혀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응한 '거야 부활론', 열린우리당 영남권 후보들의 정동영 의장 사퇴 압박 등도 여론조사가 근거자료였다.

이번에 다시 실패한 출구조사는 온 국민의 주목을 받았다. 과반을 넘고 한나라당에 70석 이상 앞선 보도를 보고 열린우리당은 만세를 불렀고, 한나라당은 개헌 저지선을 염려했다.

총선 여론조사는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 모습이 구시대 정치인을 닮았다. 살아 움직이는 정치를 순간적으로 감지할 뿐 그 실체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다.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휩쓸렸다. 정당 정책이나 후보자의 인물은 안중에 없고, 대표나 정당의 이미지와 이슈에 집착한 것도 그렇다. 그래서 여론조사가 남발됐지만 여론은 턱없이 부족했고 유권자에겐 도움이 못 됐다.

鄭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과 박근혜 효과가 궁금했지만 어떤 여론조사도 제대로 답변을 못했다. 전북대 설동훈 교수는 "여론조사를 통한 홍보와 캠페인이 뒤섞이면서 조사 홍수를 이뤘다"고 했다. 막연한 추측과 주장이 난무했고, 이러한 현상은 조사결과 공표 금지와 겹치면서 더욱더 심화됐다.

총선과 같이 급박한 현실에선 '여론조사' 정치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젠 차분하게 여론정치로 돌아가야 한다. 수많은 조사결과와 그 속에 담긴 여론을 구별하는 지혜가 특히 위정자에게 필요하다. 여론조사나 지지도에 따라 자신의 정치적 행동을 결정하는 '숫자의 정치'에 구속되어선 곤란하다. 때론 조사 결과 수치에 반하는 결정이 필요하다.

신창운 여론조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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