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약값 무질서-복잡한 유통구조가 가격왜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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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약값질서가 40년만에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전에는 못보던 대형 약국들이 동네에 등장해 잘 알려진 약을 싸게 파는 전략을 쓰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알만한 피로회복제등 일부 약품의 경우 일반 약국보다 심지어 30%선에도 살 수 있을 정도다.이는 난마(亂麻)처럼 얽힌 약품 유통구조에서 비롯된 현상이다.거래형태도 제각각이다.무자료 거래상까지 곳곳에 끼어든다.「양판점(量 販店)」스타일의 주택가 대형 약국들이 나타나 약 유통구조는 더욱 복잡해졌다. 가격질서도 실타래처럼 복잡하다.거래 수량.현찰.어음등 결제조건에 따라 약국의 매입가격이 제 각각이다.
한꺼번에 직거래로 많이 살수록,어음보다 현찰조건일때 매입가격은 싸진다.
한 제약회사 영업사원 K씨는 『가격변수가 너무 많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제약회사와 양판점,소형 약국간의 장부상 거래와 실제거래가 따로 놀기 때문이다.
그중 「표준소매가격」「할증」「커트라인」의 세가지는 의약시장만이 갖는 독특한 제도.이것이 약값구조를 복잡하게 만든다.
84년부터 시행된 표준소매가 제도는 제약협회가 약마다 표준소매가격을 정해 보건복지부에 통보하는 방식이다.
제약협회는 「표소가」의 70%를 공장도 가격으로 정한다.
약사법및 시행규칙에 「판매질서를 위반하면 행정처분을 받는다」는 규정이 있어 공장도가격 이하로 파는 약국은 제재를 받는다.
최근 일부 대형 약국들이 지나치게 싸게 팔았다고 영업정지를 받은 이유도 바로 이 규정에 따른 것이다.
도매상에도 판매가격 규제가 있다.일명 「커트라인」이 그것이다.중간마진 10~12%이하로 약을 공급하면 제재를 받는다.
「할증」은 규제가격 이면의 실거래 가격이다.
대형 약국이 메이커에 피로회복제 A약 1백병을 주문했다고 치자.메이커는 실제로는 2백75병을 가져다준다.이 「덤」1백75병이 바로 할증품이다.
이같은 「할증」은 거래량이 많은 대형 약국일수록,경쟁이 치열한 제품일수록,영업기반이 취약한 무명 제약회사일수록 커진다.할증요율은 50~2백%까지 다양하다.
할증품은 무자료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일부 도매상이나 도매브로커는 주문생산한 유사품을 헐값에 유통시키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일부 약품을 싸게 팔 수 있는 틈새가 있다.
기존 소형 약국들은 이와관련,『대형 약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잘모르는 약 끼워팔기등을 통해 고수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주장한다.
대형 약국들은 자신들이 덤핑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 마진만을 받고있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비정상적 판매가 적발되기도 했다.지난해 10월 부천시G대형 약국의 경우 약사가 아닌 직원이 허리아픈 환자에게 혈액순환제와 기운보강약을 끼워 팔았는데 기운보강약은 제약회사마저 불분명한 유사품이었다.
무자료거래가 많은 유통구조는 탈세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서울송파구 T대형 약국은 지난해 9월 탈세가 적발돼 2천여만원을 추징당하기도 했다.
결국 할인판매를 전제로 해 부풀려 있는 「표소가」와 이를 기준으로 한 「형식적인 공장도가」,그리고 베일에 싸인 메이커의 「진짜 공장도가격」간의 너무 큰 차이가 이상한 가격구조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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