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화 역풍 막으려 ‘알짜 학력정보’는 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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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현재 중2인 박모(13·서울 강남구 대치동)군은 2010년에 고교에 진학한다. 박군은 고교 선택제가 시행되면 2009년 12월에 가고 싶은 학교를 정해 지원해야 한다. 인근에 있는 H고가 좋다는 소문은 있지만 아직 어디를 지원할지 정하지 못했다. 주변 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 방법이 없어서다. 박군과 그의 부모들은 정부 정책에 따라 학교들이 정보를 공개하면 그것을 참고할 생각이었지만 그것도 어렵게 됐다. 학업성취도 결과는 2010년에나 공개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보통 이상, 기초, 기초 미달 등 3개 수준으로만 공개된다. 졸업생의 진로 현황은 ‘4년제대 ○○명, 전문대 ○명’과 같이 두루뭉술하게 나타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7일 발표한 ‘교육 관련 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특례법 시행령(안)’은 학력 정보 등에 관한 학생과 학부모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데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히려 ‘서열화 방지’에 주력한 모습이 역력하다.

시행령은 2004년 4월 학교 정보 공개를 위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한 뒤 1년3개월여 만에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정보 공개를 반대하는 교원노조 등의 반발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만 해도 파격적인 정보 공개를 약속했다. 그러나 시행령(안)에 나타난 공개 수위는 상당히 낮아졌다.

◇고교 학력평가 공시 안해=초·중·고교 학교별로 공개되는 총 40개 정보 중 지역별 학교 수준을 보여주는 것은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졸업생 진로 현황, 학교 폭력 발생 및 처리 현황, 학생 변동(전·입학) 현황 등이다. 이 가운데 타 학교와 비교 가능한 학력 정보는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유일하다.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의 진단 평가, 고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학력평가(모의 수능 등) 결과는 공시 대상이 아니다.

학업성취도 결과는 초등 6학년, 중 3학년, 고 1학년에 한정된다. 다른 학년 성취도 결과는 알 수 없다. 공개되는 성취도 결과도 3등급별 학생 비율만 해당된다. 학생들은 4등급(우수·보통·기초·기초미달) 성적을 받지만 학교는 우수와 보통을 묶어 발표한다. 구연희 학교정보분석과장은 “학교 서열화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로 현황에서도 진학한 학교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알리지 않는다. 학부모들이 대학 진학 현황을 알기 위해서는 학원들이 뿌리는 부정확한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중2와 초등 3학년 학부모 채효진(40)씨는 “3등급이면 전체적인 학교 수준을 알 수 있는 정도여서 정보 공개의 효과가 나타날지 모르겠다”며 “더 세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에 있어서도 서열화 정보는 배제된다. 입학 학생의 학교 유형(특목고·일반고 등)별 인원과 출신 학교별 인원과 같은 정보는 공시 대상이 아니다.

◇“공개 정보 범위 넓혀야”=학업성취도 평가는 올해부터 모든 학교가 본다. 지난해만 해도 전체 학생의 3~5%만 응시했다. 이 때문에 2008년과 2009년 평가 결과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논란이 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굳이 2010년부터 공개하겠다는 건 정치적인 판단으로 보인다”며 “학력정보 공개 범위를 넓히고 세분화하는 것이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느끼는 저소득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홍준·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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